*강원/유형문화재,기념물

강릉 명주군왕릉(강원도 기념물1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8. 29. 21:38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이다. 그가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부른다.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하며, 선덕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경주로 가는 중에 큰 비가 내려 강을 건널 수 없어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하늘이 그를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하여 김경신(후의 원성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주원은 이듬해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는 명주(지금의 강릉)로 와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 ’으로 봉해졌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왕은 그에게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食邑:공신에게 주는 땅)으로 주었다. 현재 묘역에는 봉분 아랫부분에 긴 사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묘 2기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가 있다.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고, 동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이 능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능이다. 주원의 가계(家系)는 여러번 상대등(上大等)과 시중(侍中) 직책을 맡아온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유정(惟正)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직계(直系)로서 명주에 벼슬을 받아 와서 이 지방 토호(土豪)의 딸 박연화(朴蓮花)와 결혼하여 주원을 낳았다. 신라 제37대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 없이 돌아가자, 당시 무열왕의 직계손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이루었던 주원이 왕위 계승자로 유력하였다. 그러나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연고권을 가지고 있던 강릉으로 자진해서 물러났다. 원성왕(元聖王)은 2년(786)에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封)하고 강릉(江陵)·양양(襄陽)·삼척(三陟)·울진(蔚珍)·평해(平海) 등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뒤 주원의 아들 헌창(憲昌)과 손자 범문(梵文)이 중앙(中央) 정계(政界)에 불만을 품고 반란(反亂)을 일으켰으나 결국 모두 실패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건물 뒤로 있는 길은 제사 지낼 때 신이 다니는 길인 신도.

 

 

왕릉은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있다.

 

 

 

 

 

 

 

 

 

 

 

 

 

 

 

 

왕릉에서 내려다본 모습

 

 

 

동물상이 망가져 있네요.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120000,32&queryText=((V_KDCD=23)) <and>(((V_NO >=12)<and>(V_NO <= 12)))&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