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 5년(1627)에 처음 지어졌다고 알려진 정자이다. 지금의 건물은 1927년 정묘생(丁卯生)의 동갑계에서 강릉객사의 일부를 옮겨지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 현종 7년(1666) 송광연이 강릉에 와 있을 때 정자 아래에 조그만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올라와 놀던 곳이다. 나라가 위태롭던 조선 말기에는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왜병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대항하다가 죽은 한국청년단원 222명의 영혼을 추모하는 충혼탑과 용감히 싸우다가 서울수복 하루 전에 죽은 학생 3명의 묘가 있는 유적지이다. 총 4칸 규모의 1층 집으로, 벽 없이 난간만 두른 상태에서 마루만 놓은 T자형 집이다. 정자 안에는 12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밖에는 해강 김규진과 석둔거사가 쓴 ‘오성정(五星亭)’ 현판이 걸려있다. 오성정은 1927년 당시에 살던 백성들의 나라 잃은 설움과 주권회복의 소리없는 염원이 함께 담겨있는 소중한 건물이다. 이 정자(亭子)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5년(1627)에 창건(創建)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의 건물은 1927년에 정묘생(丁卯生)의 동갑계(同甲契)에서 강릉객사(江陵客舍)의 일부를 옮겨서 건립(建立)한 것이다.이곳은 원래 현종(顯宗) 7년(1666) 송광연(宋光淵)이 지평(持平)으로 강릉에 와 있을 때 이 정자 아래에 조그만 집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올라가 놀던 곳이었다고 전한다.또 구한말(舊韓末) 국운(國運)이 기울었을 때는 의병(義兵)이 이곳에 집결하여 왜병(倭兵)과 싸운 곳이며, 6·25 때 공산군(共産軍)에 항거하며 순국(殉國)한 한국청년단원(韓國靑年團員) 222인의 충혼탑과 수복전야(收復前夜)에 산화(散華)한 순국 삼학도(三學徒)의 묘(墓)가 있는 유적지이다.(출처 : 문화재청)
강릉 남산공원 안에 위치한다.
강릉단오문화관쪽으로 찾아갔다.
남대천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470000,32&queryText=((V_KDCD=21)) <and>(((V_NO >=47)<and>(V_NO <= 47)))&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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