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중요-시도 민속문화재

고성 어명기가옥(중요민속문화재13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9. 26. 22:09

현 주인 어명기의 2대조 어용수가 1860년대에 사들인 집이다. 약 400년 전에 이 터에 처음 자리잡은 집으로 화재로 불탄 것을 영조 26년(1750)경에 어태준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경사진 언덕바지에 넓게 집터를 잡고 'ㄱ'자형의 몸채가 위치하고 왼쪽으로는 방앗간, 오른쪽으로는 행랑채, 뒤쪽으로 헛간채를 두었다. 몸채는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짓지 않고 한 건물에 모두 시설하였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로 세줄겹집이다. 건물 왼쪽에 넓은 부엌과 외양간이 있고 중앙에 안방과 건넌방·대청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사랑방 3칸이 세로로 있다. 외양간을 부엌 앞으로 돌출시킨 것은 보통 고성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면형태이다. 부엌과 외양간 사이 간격에는 지붕을 설치하고 뒤쪽으로 뒤주를 붙박이하여 곡식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 중 가장 앞쪽에 위치한 사랑방은 주인의 일상거처이며, 뒤쪽 2칸의 사랑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더그매'이다. 지붕과 천장사이에 나타난 공간을 더그매라고 하는데, 이 집에는 안방·웃방·가운데방 모두에서 더그매가 보인다. 필요할 때 집안물건을 넣어두는 보관장소로 사용되기도 하며, 지붕으로부터 내려오는 한기를 막기도 한다. 규모가 당당하며 건축기법이 능숙하고 옛 법식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는 모범적인 건축물이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태백산맥(太白山脈) 일대에서 삼척(三陟) 원덕리(遠德里)를 경계로 하면 폐쇄형의 북방형 겹집들 분포가 주류를 이룬다. 원덕리가 그 하한선(下限線)에 가까워 남방성의 집들과 교차혼재하는 고장이 된다. 이 남방형의 폐쇄성이 강한 까치구멍집은 그 분포의 북한계선이 강릉지역을 넘지 못하여 그 북쪽의 집들은 평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북쪽의 집들은 산곡간형(山谷間形)과 평야, 해안성형(海岸性形)의 집으로 나뉘는데 개마고원(蓋馬高原)쪽으로 이어지는 산곡간(山谷間)의 집과 해안을 타고 원산 · 함흥 등지에 분포되는 집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다. 고성의 이 집은 해안성이 짙은 유형에 속하며 고식(古式)의 기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터는 양명(陽明)한 향으로 형국되어 있다. 남남서향하였고 배산(背山)이 두두룩 하다. 집의 평면구성은 이 지역의 통식(通式)에 따랐다. 이른바 세줄겹집이라 일컫는 것으로 정면 4간에 측면이 3간인 규모인데 부엌 앞쪽으로 1간이 전출(前出)되어 아래는 외양간, 윗층은 수장공간(收藏空間)으로 사용되도록 의도되었다. 몸체와 이 1간과는 별조(別造)한 것이어서 간극(間隙)이 생기게 되는데 이 부분을 이용하여 뒤주를 붙박이 하여서 곡식저장에 유용하도록 하였다. 빈틈 없이 활용하는 지혜의 발로라고 하겠다. 이 1간의 결구(結構)는 매우 고식이면서도 훈련된 대목(大木)에 의하여 조영되어서 처리하는 기법등이 건실하다. 이 덧달아낸 1간을 초즙(草葺)하기도 하나 이 집에서는 홑처마의 당당한 건물로 구조하였다. 목재의 취득이 비교적 용이하였다는 여건을 이로써 이해하게 된다. 몸채도 홑처마이나 당당한 구성의 팔작 기와지붕이다. 깊은 처마를 구성한 서까래도 굵직하고 듬실하다. 평면에서 부엌은 좌단의 1간을 차지하였으나 세줄박이의 측3간을 통간(通間)삼아 전체로는 널찍한 넓이를 사용하고 있다. 안방쪽에 부뚜막이 있고 서북측에 부설한 내고(內庫) 1간이 별설되어 있다. 부엌과 안방 사이에 부엌간이 생기는 북방지역의 구조와는 다르다. 그 유형의 남방식형용(南方式形容)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엌간이 생략된 것이다. 그대신 이 집에서는 세줄박이에서 앞쪽 1간씩 3간을 전부 미루를 깔아 대청을 삼았고 또 우측 끝에 반간의 퇴를 두어 고상식(高床式)과의 절충된 구조를 보였다. 이점은 이 집이 대표하는 이지역 일대의 특색중의 하나가 되는데 북방식저상형(北方式低床形)에 남방식고상형(南方式高床形)이 절충되어진 사례를 잘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방식 전형에서는 볼 수 없는 뚜렷한 남방적 요소인 것이다. 안방을 제외한 방들은 각간에서 2간식으로 나뉘어져서 쓰임에 따라 전유공간(專有空間)으로 활용하도록 의도하였다. 이 집의 구성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더그매의 존재이다. 안방, 웃방, 가운데방의 3간을 모두 평천장(平天障)하여서 대량이상(大樑以上)의 삼각장공간(三角狀空間)은 터져 있다. 마루에서 올려다 보면 연등천상이 다 드러나 있다. 필요에 따라 이 공간은 다 수장처(收藏處)가 된다. 이 구조는 귀틀집에 퇴를 첨가시키기 위하여 큰 건물 하나를 덧씌웠던 상대(上代)의 합병형(合倂形) 집의 근대화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역시 특색으로 손꼽을 수 있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이며 충실히 법식에 따르고 있다. 서까래 사이의 앙토에는 맥질하여서 비교적 깨끗한 맛을 지니고 있다. 몸채 뒤로 동향한 3간의 고간(庫間)이 있고 배나무, 감나무를 심은 뒷동산이 널찍하게 가꾸어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간판에 아직도 중요민속자료로 되어 있네요. 지금은 중요민속문화재라고 하지요.

 

 

 

 

진입로가 불편하다. 동네 뒷편으로 간다음 내려와야한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1310000,32&queryText=((V_KDCD=18)) <and>(((V_NO >=131)<and>(V_NO <= 131)))&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