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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보물16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2. 8. 21:39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는 고려 중기에 펴낸 것으로 권 상·중·하 3권이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5.3㎝, 가로 275㎝이다. 권 상·중·하 뒤에는『일자정륜왕다라니』,『자재왕치온독다라니』,『관세음보살보문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은에다 금을 입혀 만든 세로 5.3㎝, 가로 3.5㎝, 두께 0.5㎝의 상자에 책을 넣고 이를 다시 세로 13.8㎝, 가로 12.8㎝, 두께 6㎝의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하였다. 은합 윗부분에 고리가 좌우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들고 다니기 위한 일종의 장신구였음을 알 수 있다. 책의 끝부분에 적혀 있는 기록을 보면 최충헌과 최우, 최향 3부자가 당시 겪고있던 어려운 난을 빨리 해소하고 장수를 누리기 위해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윗부분이 약간 잘려지고 새겨진 글자들과 면이 깨끗하지 못하여 읽기 어려운 것으로 보아 나중에 다시 찍은 판본으로 여겨진다. 고려 중기 최씨 무신정권의 중심인물을 위하여 호신용(護身用)으로 간행된 목판본으로 당시 신앙의 한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권상(卷上)은 책머리에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책 끝에는 『불정심관세음경(佛頂心觀世音經)』으로 약칭되어 있으며, 권중(卷中)은 책머리에 『불정심요병구산방(佛頂心療病救産方)』, 책 끝에는 역시 『불정심관세음경』으로 되어 있고, 권하(卷下)는 책머리에 『불정심구난신험경(佛頂心救難神驗經)』, 책 끝에 『불정심관세음경』으로 되어 있다. 길이 5. 3 × 너비 3. 5 × 두께 0. 5cm의 은제도금합(銀製鍍金盒)에 넣고 이를 다시 길이 13. 8 × 너비 12. 3 × 두께 6cm의 목제함(木製函)에 넣어 보관되어 있다. 은합(銀盒) 표면에는 호법선신상(護法善神像)을, 그리고 그 주위에는 운문(雲文)을, 하합(下盒) 바깥면에 팔층보탑(八層寶塔)을 그려 놓았으며, 그 주위에는 역시 운문을 그렸는데, 이는 나무에 새긴 것으로, 눌러 찍었다. 은합 윗부분에 지름 1cm의 은제(銀製) 고리가 좌우에 장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호신(護身) 휴대용인 듯하다. 책 끝에 다음과 같은 발원문(發願文)이 있다. 특위진강후(特爲晋康侯) 겸□남□□시장군우(兼□男□□侍將軍瑀) 전중내급사향(殿中內給事珦) 재난돈소(재難頓消) 복수무강지원(福壽無疆之願)진강후(晋康侯)는 최충헌(崔忠獻)(1149∼1219)이 희종(熙宗) 2년(1206)에 받은 봉작(封爵)이고, 우(瑀)와 향(珦)은 충헌(忠獻)의 초취(初娶)인 송씨(宋氏)에게서 낳은 두 아들이다. 충헌(忠獻)이 죽은 뒤에 우(瑀)가 대권을 잡았는데, 향(珦)이 반란을 일으키다 잡혀 죽었다. 이 목판(木板)은 충헌이 살았을 때에 조성되었을 것이나 인본(印本)의 자획이 깨끗하지 못하고 판이 이지러진 곳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인(初印)이 아닌 후쇄본(後刷本) 같으니 아마도 최우(崔瑀)(뒤에 이(怡)로 개명)가 집권하고 향(珦)이 아직 죽기 이전에 재인(再印)한 것인 듯하다.(출처 : 문화재청)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은 보물16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럼 아래의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은???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6910000,11&queryText=((V_KDCD=12)) <and>(((V_NO >=691)<and>(V_NO <= 691)))&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