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부산-대구/울릉도 첫번째

울릉 나리동 투막집(중요민속문화재25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 4. 20:44

  이 집은 울릉도 개척당시(1883년)에 있던 울릉도 재래의 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너와집으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이다. 이집은 5칸 일자집으로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큰방, 중간방, 갓방은 전부 귀틀구조로 되어있는데 큰방과 중간방은 정지에서 내굴로 되었고 갓방은 집 외부에 돌린 우데기를 돌출시켜 별도의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집 주위에는 전부 우데기를 돌리고 앞부분에는 폭을 넓게 잡은 죽담이 있다. 또한, 투막집은 1945년대에 건립한 것으로서 본래 3칸 집이었으나, 한칸을 달아내어 현재는 4칸으로 되어있다. 지붕은 새로 이었으며 큰방과 가운데 방의 벽은 귀틀로 되어있고 정지의 부뚜막은 아궁이에서 내굴로 되어있는데 정지 바닥은 죽담보다 낮게 하여 계단을 한단 놓아 오르내리게 하였다. 정지에는 별도의 벽을 두지 않고 옥수수대로 세워 돌린 우데기로 가렸다. 방 주위의 죽담은 앞쪽만 더 넓어져 활동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당초에는 경북울릉 민속자료 울릉나리동너와집(제55호), 울릉나리동투막집(제56호)로 지정(1984.12.29)되었으나 신청(2007. 8.24)을 받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56호로 지정(2007.12.31)되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나리분지 내 마을 초입에 있는 울릉도 유일의 너와집이다. 이 집은 울릉도 개척당시(1883)에 정착민이 지은 가옥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1940년대에 건축한 것인다. 가옥은 비교적 널찍한 평탄지에 터를 잡고 정면5칸, 측면1칸의 큰 살림집을 남서향으로 앉혔다. 평면 형태는 정지를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3칸(큰방·머릿방·사랑방)온돌방, 좌측으로는 마구간 1칸을 연접 배열시켰다. 방벽은 얕은 축담위에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직경 9~24㎝의 통나무 7개를 정자 형태로 쌓은 귀틀식 구조이다. 그리고 통나무 사이의 틈새는 진흙으로 빈틈없이 메웠다. 방벽 사면의 처마 끝단에는 가는 막기둥을 세우고 판자로 막은 외벽이 둘처쳐져 있다. 방벽과 외벽사이의 축담 폭은 앞쪽이 1.3m이고, 나머지는 0.9~1.1m이다. 축담 바닥에서 방바닥까지의 높이는 대략 2.2~2.3m정도이고, 외벽높이는 1.8m정도이다. 축담은 겨울철 적설량이 많거나 여름철에 일사를 차단해 주어 실내 작업·저장·생활공간으로 가장 중요역활을 담당한다. 출입문은 방 또는 정지문 앞에 내어 출입과 채광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각방은 축담 공간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고, 각 방간 출입시설은 없다. 정지 앞 뒤로는 벽체 없이 축담과 연결되어 개방되어 있다. 정지의 아궁이 바닥은 방에 불이 잘 들어가게 축담 바닥보다 약70㎝ 정도 낮추고 부뚜막에는 2개의 솥을 걸었다. 지붕은 우진각에 너와를 일정 간격으로 여러 겹 얹고, 그 위에 큰 돌로 눌러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였다. 살림채 앞쪽에는 ‘ㅅ’자 형태로 띠지붕을 이은 변소가 있다. 또한 투막집은 나리분지 내 너와집에서 50m쯤 떨어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인 1945년대에 건립된 투막집으로서 배치는 서북향한 몸채를 중심으로 좌축에는 헛간, 우측에는 측간과 돼지우리가 전체적으로 ‘ㄱ’자형을 취하고 있다. 마당 주위로는 바자울을 둘렀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큰방·머릿방·사랑방의 순으로 연접되어 있고, 사랑방은 후대에 달아낸 것이다. 방벽은 큰방과 머릿방 2칸에만 앝은 기단위에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직경 8~24㎝ 크기의 통나무 8개를 정자로 쌓아 귀틀구조를 만들고 통나무 사이의 틈새는 진흙으로 메웠다. 사랑방은 네모기둥에 인방을 들이고 심벽으로 처리했다. 방벽 사면의 처마 끝단에는 막기둥을 세우고 바깥으로는 띠로 이엉을 엮어 만든 우데기를 둘렀다. 특히 방벽은 통나무가 우데기 외벽 기둥 위까지 돌출되어 처마 서까래 선단을 받치고 있으며, 방벽과 우데기 사이에는 폭0.8~1.4m 정도의 축담공간이 있다. 방벽 높이는 축담에서 2.1m 가량이고, 방 출입은 문얼굴이 들어 설 자리만큼만 통나무를 잘라내고 양측에 문설주를 세워 외여닫이 교살문을 달았다. 그리고 방 사이의 벽에는 문이 없다. 외벽의 출입구는 각 방 또는 정지 출입구 앞에 말아 올리는 형태로 내어 출입과 채광의 편의성을 동시에 고려하였다. 정지는 벽체 없이 기둥만 세우고 외벽(우데기)이 벽체를 대신하였다. 정지 아궁이 바닥은 축담 바닥보다 약60㎝가량 낮추고, 부뚝막에는 2개의 솥을 걸었다. 정지 뒤쪽 축담에는 장독대가 마련되어 있다. 방안 천정은 모두 고미반자로 꾸몄고, 지붕은 우진각에 띠로 이엉을 엮어 얹었다.(출처 : 문화재청)

 

 

  앞에 있는 초가집이 투막집이고 멀리 보이는 집이 너와집이다. 릉 나리동 너와집 및 투막집이 중요민속문화재256호이다.

 

 

투막집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2560000,37&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