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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휴대용 앙부일구(보물85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 9. 10:26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에 처음 만든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고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궁궐이나 관공서 그리고 때로는 양반들이 집에서까지 널리 사용하였으며,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에 설치하는 것은 대개 받침대 위에 올려 놓게 만들었는데, 청동제와 돌로 깎아 만든 것이 많은 편이고 자기제품도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아름답고 품위있게 만들었고 조각을 한 돌받침대에 올려 놓는 경우가 많았다. 휴대용은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침을 세우게 되어 있는 간략한 것이 있고, 자석을 붙여 남북을 정확하게 맞춰 시각을 측정하게 만든 정밀한 것의 2종류가 있다. 휴대용 앙부일구(携帶用 仰釜日晷)는 세로 5.6㎝, 가로 3.3㎝, 두께 1.6㎝의 돌로 만들었으며,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하였다. 또한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 연대(1871)가 새겨져 있어 해시계로서의 학문적 가치를 높여준다. 반구형 해시계 면의 직경은 2.8㎝이고, 나침반의 직경 1.9㎝로 주위에 24방향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낮 시간과 시각선이 새겨져 있고 24절기와 절기선들도 새겨져 있다. 이런 휴대용 해시계는 만든 솜씨가 뛰어난 매우 드문 유물로 조선시대 과학기기 제작기술의 정밀함과 우수함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해시계이다. 세종(世宗)때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으며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궁궐이나 관공서, 그리고 때로는 양반들의 집에서까지 앙부일구는 해시계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이 해시계는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을 알고 싶을 때 측정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정원에 설치하는 것은 대개 받침대 위에 올려놓게 만들었는데, 청동제(靑銅製)와 돌로 깎아 만든 것이 많은 편이고 자기(磁器) 제품도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아름답고 품위있게 만들었고 조각을 한 돌받침대에 올려놓는 경우가 많았다. 휴대용으로는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영침을 세우게 되어 있는 간략한 것이 있고, 지남철을 붙여 남북을 정확하게 맞춰 시각을 측정하게 만든 정밀한 것의 2종류가 있다. 예시된 휴대용 앙부일구는 조선시대에 만든 해시계 중에서는 가장 정밀하면서도 작은 것이며, 만든 솜씨가 뛰어난 완벽한 휴대용 해시계로서 매우 드문 훌륭한 유산이다. 이런 휴대용 해시계는 조선시대 과학기기 제작기술의 정밀함과 우수함을 보여주는 귀중한 보기로,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것들이 여러 개 남아 있다. 그 중 완전한 유물은 매우 드물고 대체로 상아 제품과 돌 제품들이다. 5.6×3.3×1.6cm의 돌로 만든 이 휴대용 앙부일구는 「앙부일구」「북극고삼십칠분삼십구분십오초(北極高三十七分三十九分十五秒)」라고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하였음을 밝혔고, 제작자(製作者) 강건(姜健)의 이름과 제작년대(製作年代) 동치신미년(同治辛未年)(1871)이 새겨져 있어 해시계로서의 학문적(學問的) 가치(價置)를 높여 준다. 반구형 해시계면의 직경은 2.8cm이고 지남침반의 직경은 1.9cm로 주위에 24향(向)의 글자가 새겨있다. 해시계반에는 인(寅)·묘(卯)·신(申)·유(酉)·술(戌)의 낮 시간과 시각선이 새겨있고, 동지(冬至)에서 하지(夏至)의 24절후와 절후선들을 새겨놓았다.(출처 : 문화재청)

 

강건이 만든 휴대용 해시계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8520000,1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