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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17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2. 3. 19:11

  봉암사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전기의 탑비로 봉암사를 중흥한 정진대사의 것이다. 정진대사(878∼956)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로, 효공왕 4년(900)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고 경애왕 1년(924)에 돌아와 신라 경명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고려 태조 18년(935)에는 봉암사를 두번째로 크게 짓고,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특히 고려 전기의 태조·혜종·정종을 선문(禪門)에 들게 한 장본인으로,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왕은 ‘정진’이라는 시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이 두드러지게 커 보인다. 꼭대기에는 불꽃무늬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우뚝 솟아있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화되었으며 조각 기법이 퇴화하였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몽유가 짓고, 명필 장단열이 글씨를 썼다. 이 석비는 봉암사(鳳巖寺)를 중흥(中興)한 정진대사(靜眞大師)의 부도탑비(浮屠塔碑)로서 고려(高麗) 초기(初期)의 조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귀부(龜跌)와 이수(이首)의 형식은 일반적인 방식을 취했으나 비좌(碑座)가 두드러지게 큰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정상에 화염보주(火焰寶珠)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비의 높이는 2.73m이며, 너비는 1.64m로서 경내(境內)에 같이 있는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와 그 규모가 똑같다. 정진대사(878∼956)는 공주(公州) 사람으로서 왕씨(王氏)인데 남혈원(南穴院)에 있던 여해선사(如解禪師)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대사의 시호(諡號)는 정진(靜眞)으로 고려 태조(太祖) 18년(935)에 봉암사를 중건하여 불교 중흥에 크게 이바지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1720000,37&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