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중요-시도 민속문화재

순천 낙안성김소아가옥(중요민속문화재9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5. 16. 20:43

낙안성의 서문이 있던 자리를 나가면 오른쪽으로 도는 골목안에 자리잡고 있는 초가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마당이 있고 동쪽끝은 성벽으로 막혀 있어 따로 담을 쌓지 않았다. 마당의 북쪽으로 '一'자형의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왼쪽부터 부엌·안방·안마루·윗방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앞쪽으로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안방쪽은 뒷쪽으로도 툇마루를 놓았다. 부엌은 앞과 뒷쪽으로 넓히면서 큰 공간을 이루고 있다. 부뚜막은 안방쪽의 벽에 설치되어 있고, 그 옆쪽으로 널판벽을 설치하여 위에 벽장문을 달고 찬장처럼 사용하였다. 윗방의 옆으로 헛간이 있는데 토담으로 쌓은 부분은 나중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문의 오른쪽으로는 돼지막·헛간·화장실로 구성된 헛간채가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읍성(邑城)의 서문도 현재 형체만 있을 뿐 유구(遺構)를 알 수 있는 시설은 남아있지 않다. 그 서문을 나서면 곧바로 우회하는 골목안에 성벽을 마당 끝에 둔 집이 있다. 남향의 양명(陽明)한 집으로 낙안(樂安)마을의 보편적인 평면구성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구조를 지녔다. 초가삼간(草家三間)의 구성이다. 부엌 간반(間半)과 건넌방 옆의 헛간부설은 건평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조선조의 관습이었다. 이 집은 앞뒤퇴가 다 있어서 통산(通算)하면 8간의 넓이가 된다. 이것을 옛사람들은 초가삼간이라 하였던 것이다. 부엌은 앞퇴까지를 포괄하여서 판선(板扇)이 평주간(平柱間)에 설치되었다. 여느 부엌의 구성이나 별다른 바가 없다. 단지 부엌의 서쪽과 뒤편 벽을 트고 토담을 쌓아 넓혀서 그만큼 넓게 사용하고 있는 차이를 보일 뿐이다. 안방벽 쪽으로 부뚜막이 있다. 앞퇴와의 간벽(間壁)은 판벽(板璧)으로 막혔는데 중방(中枋)위에는 판비(板扉)를 단 벽장을 만들어 찬장과 같은 용도로 쓸 수 있게 하였다. 부엌 다음이 안방 1간이고 다음이 안마루 1간, 이어 웃방 1간이 계속되고 그 다음간은 헛간이다. 토담으로 쌓은 이 부분은 나중에 달아낸 것으로 보인다. 두 방은 뒤의 퇴를 열었으나 안마루만은 그것을 포함시켜서 그만큼 넓게 되었다. 방, 안마루, 건넌방엔 앞쪽으로 띠살의 분합문이 달렸다. 방의 문짝은 키가 낮은데 비하여 안마루의 문짝은 키가 높다. 대청엔 단 문짝을 크게하는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의 안마루는 일종의 고방(庫房)이냐 아니냐의 미묘한 구조를 보인다. 곽형두씨택(郭炯斗氏宅) 같이 판벽(板璧)한 뒤에 문얼굴낸 구조이면 분명히 고방인데 이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중 ·서부 제택(弟宅)들에서 대청 앞에 분합문을 달아 개폐시키게된 그런 줄기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마루라는 명칭도 고방이라 부르는 의도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아주 미묘하여서 실제로 의도된 것인지의 여부에 달린 것이나 창건한 주인과 목수가 없는 현재로서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대청 바깥벽에 분합문을 달려는 의도이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지정될 학술적인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출처 : 문화재청)

 

 

 *서문 표받는 곳 맞은편 성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있음. 문이 닫혀있어 출입문 위로 사~알짝 실례를....문화재청에는 서내리 61-1로 되어 있는데 안내판에는 서내리 81이네요. 어느것이 맞는지? 지도 검색해보니 서내리 61-1이 맞는 듯하네요.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990000,36&queryText=((V_KDCD=18))%20<and>(((V_NO%20>=99)<and>(V_NO%20<=%2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