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순천 충무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48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5. 17. 18:33

임진왜란 때 공이 컸던 충무공 이순신과 정운, 송희립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강포·한산도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충장 정운(1543∼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옥포·당포·한산도 등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희립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운 장군의 군관으로서 영남지역에 원병파견을 주장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숙종 16년(1690)에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모셨으나 1944년 일본인들이 불태워 순천향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지었다.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모두 4동으로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충무사는 임진왜란 때 전공이 컸던 충무공 이순신과 정운(鄭運), 송희립(宋希立)을 제향하는 사우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숙종 16년(1690)에 인근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왔으나, 1944년 가을 일본인(日本人)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러던 것을 순천향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사당, 영당, 제실 등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향은 순천지역 충무공경모회에서 충무공 탄생일과 귀천일에 모신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년)은 자는 여해(汝諧), 덕수인(德水人)이다. 서울 출신으로 선조 12년(1579) 식년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발포수군만호, 정읍현감을 지냈고 선조 24년(1591)유성용의 천거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승진, 여수의 좌수영에 부임 군비확충에 전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강포, 한산도 등지에서 승첩을 거두었고 삼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대첩을 거두었고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영의정에서 추증되고 시호는 충무공이다. 정운((鄭運)·1543∼1592년)은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당시 영암)태생이다. 선조 3년(1570) 무과에 급제한 뒤 웅천현감, 제주판관을 거쳐 선조 24년(1591) 유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鹿島萬戶)에 임명되어 군기를 정비하였다. 임진왜란 때 옥포, 당포, 한산해전 등에 참여하였고 부산포해전시 「몰운대」에서 순절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이다. 송희립((宋希立)·1533∼1623년)은 고흥 출신이다. 임란이 일어나자 지도만호로 형 대립과 함께 의병을 모아 이순신의 막하장으로 종군하여 승전하였다. 경내의 건물은 4동으로 신실은 정면 3칸, 측면에 전퇴를 둔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0480000,36&queryText=((V_KDCD=31)) <and>(((V_NO >=48)<and>(V_NO <=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