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형문화재,기념물

제주 하모리지석묘(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2-3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3. 14. 11:27

  제주도의 고인돌은 한반도와는 달리 청동기시대가 아닌 탐라시대에 만들어진 거석문화유산으로 북방식․남방식․개석식(무지석식)으로 구분된다. 이 지석묘는 남방식고인돌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장축 방향은 북서쪽이다. 상석 아래 지석은 작은 괴석이나 할석으로 6매가 상석 주변을 돌아가면서 고여 있고, 남동쪽은 이중으로 고여 있어, 매장시설은 지하에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돌의 장축 242cm, 단축 185cm, 두께 60cm이며, 축조 시기는 탐라국시대 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023700,39&queryText=((V_KDCD=23))%20<and>(((V_NO%20>=2)<and>(V_NO%20<=%202)))&maxDocs=15000&docStart=41&docPage=10&canasset=N)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제주도에는 용담동고인돌(1호∼6호), 오라고인돌, 도련고인돌(1호∼2호), 삼양고인돌, 외도고인돌(1호∼5호), 광령고인돌(1호∼6호), 하귀고인돌(1호∼2호), 창천고인돌, 신례리고인돌(1호∼2호)이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고인돌은 현무암을 주재료로 사용했으며 무덤 안에서는 돌도끼와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제주도의 고인돌은 형태상 바둑판식으로 분류되지만, 시신을 안치하는 돌방의 위치가 바둑판식 고인돌과는 달리 지상에 마련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바둑판식 고인돌과 구별된다. 제주도의 고인돌은 육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름대로의 특수한 형태를 이루었고, 일본 큐슈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선사시대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일본 지역과의 문화교류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 용담동(龍潭洞) 일대에는 제주대학교 구내의 지석묘(支石墓)를 비롯해서 형태와 크기가 다른 5기의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다. 지석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先史時代)에 해당되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무덤으로 돌멘, 고인돌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돌배(石船)라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발굴 조사된 이곳 지석묘의 내부에서 돌도끼(石斧),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조각편(破片) 들이 수습되기도 했다. 외부의 모양은 시신(屍身)을 안치하도록 판자 모양의 돌을 사용하여 석실(石室)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 완성했다. 재료는 모두 현무암(玄武岩)으로 육지에 있는 지석묘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 제주도(濟州道)의 지석묘는 일본(日本) 큐슈지역(九州地域)으로 전파(傳播)된 것으로 선사시대의 문화교류(文化交流) 또는 이동(移動)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020000,39&queryText=((V_KDCD=23))%20<and>(((V_NO%20>=2)<and>(V_NO%20<=%202)))&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

 

 

 

 

하모리지석묘는 서귀포시대정청소년수련관 안에 있다. 지석묘 안내판이 보인다.

 

 

 

 

옆에 보이는 건물이 서귀포시대정청소년수련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