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이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평면으로는 총 6칸 중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이고 왼쪽 2칸은 온돌방이다. 대청의 앞면·옆면·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차별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하여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받침은 4각형의 키가 높은 돌을 사용했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2012~2013년 지붕 보수과정에서 종도리 하부면에서 1617년 상량과 1649년 이축내용이, 또한 종도리 장여 상부면에서 1709년 중수상량과 경과 등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朝鮮) 효종(孝宗) 때 대사헌(大司憲), 병조판서(兵曹判書),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이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別堂)으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표본으로 들 수 있으나,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과히 크지 않다. 오른쪽 4칸이 대청이 되고 왼쪽 2칸이 온돌방인데, 전면에는 쪽마루를 깔았으며 온돌방의 벽 아래 부분에는 머름을 대었다. 주춧돌은 사각형의 귀가 높은 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주택(住宅) 건물(建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樣式)이다.(출처 : 문화재청)
대전 회덕 동춘당은 보수중이었는데 완공일은 지났는데 예정일보다 늦어지네요. 송촌동주민센터 근처 동춘당공원 안에 위치한다.
사진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대전 회덕동춘선생고택(정침,가묘,별묘,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3호, http://blog.daum.net/dbsqkqh/397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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