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명승, 사적

부여 송국리 유적(구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 사적24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4. 28. 21:37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토기와 달라 송국리식토기라 불린다.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 집터는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 →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忠淸南道 扶餘郡 草村面 松菊里)는 초촌면 소재지에서 동북으로 1.5㎞에 자리한다. 해방 30m안팎의 낮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동, 남, 북, 세면에 기름진 들이 펼쳐진 전망이 좋은 곳이다. 1974년에 유적이 알려지면서 석관(石棺)무덤과 그 안의 부장품으로 비파형동검, 간돌칼 같은 남쪽에서는 처음 알려진 유물들이 드러났고, 반달칼, 돌도끼, 놋창끝 등이 나와 이듬해부터 발굴에 들어갔다. 유적의 발굴은 1975년 부터 1987년까지 7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집터 33기, 석관(石棺)무덤 1기, 옹관(饔棺)무덤 4기 등이 드러났으며, 그밖에 청동기시대의 많은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석비례층을 20∼40㎝ 깊이로 파고 지은 앝은 움집으로, 집자리 테두리는 둥근꼴, 둥근넙적꼴, 긴네모꼴의 세가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둥근 집자리에서는 기둥구멍이 가운데 있어 광주 송암동 유적과 해미 휴암리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닮은 꼴이고, 긴네모꼴 집자리에서는 가는 나무가지를 이용한 벽체를 세워 기둥을 받치도록 한 짜임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로는 집자리 벽선과 어깨부분에 비스듬한 기둥을 세워 집을 지탱한 곳도 있다. 지붕에 얹었던 기둥과 짚이 불에 탄채 고스란히 드러나 우진각 지붕을 얹었던 것으로 미루어진다. 집크기는 대체로 10∼20㎡안팎의 작은 규모이며, 가장 큰 것은 38㎡쯤이다. 집에 딸린 작은 터는 창고시설로 보인다. 질그릇에서 송국리 토기로 부를 수 있는 민토기의 독특한 모습이 있고, 붉은 간토기도 나오고 있다. 석기로는 세모돌칼, 돌검, 돌화살촉, 맷돌, 도끼, 대패날이 있으며, 나무자루가 달린채 나온 돌검과 돌날이 있고, 부채날 청동도끼의 거푸집도 나왔다. 집자리와 관련되는 석관(石棺)무덤에서 비파형동검과 청동끌이 나와 송국리 사람들이 청동기를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송국리 사람들이 석관(石棺)무덤과 옹관(饔棺)무덤을 쓴 것은 뚜렷하며, 부여지역에서 고인돌무덤이 여럿 나왔고, 송국리 유물이 고인돌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과 비슷한 성격을 띈 점으로 보면 고인돌 무덤을 만들기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송국리유적의 연대는 유물 갖춤새를 다른 유적들에서 나온 것과 견주어 B.C 8∼9세기의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송국리 54지구의 집자리에서 나온 숯을 연대측정(C14방법)한 결과는 2,665±60B.P,2,565±90B.P로 밝혀졌다.(출처 : 문화재청)

 

 

 

 

 

 

  왼쪽으로 가면 부여 송국리 유적(사적249호)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부여 산직리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40호, http://blog.daum.net/dbsqkqh/4010)가 나온다. 

 

 

송국리 유적 주차장이고 위에 자료관이 있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자료관 옆에 있는 길로 400여m가야한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490000,34&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