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심원사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138호인 연천군 심원사지부도군(http://blog.daum.net/dbsqkqh/4138)에서 조금 더 올라 가면 있다.
연천 심원사지는 경기도 기념물213호인데 현장 안내판에는 214호로 되어 있네요.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내용 : 안녕하십니까? 저희 군정에 대한 많은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문의하신 연천 심원사지 안내판 오기는 즉시 처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위 사항과 관련하여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담당자 윤XX(031-839-21XX)에게 연락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어 그 터만 남겨져 있던 것을 2003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와 더불어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유점사 본말사지에 따르면 심원사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에 의해 최초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거느렸던 것으로 여겨된다. 한말 의병활동의 본거지로서 건물이 전소되어 재건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되었다. 2003년 발굴조사를 거쳐 극락보전이 복원되었다.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寶蓋山)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유점사 본말사지에 따르면 심원사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에 의해 최초로 창건되었고 헌강왕(859) 때 범일국사가 흥림사(興林寺)로 재창하였으며 1396년(태조 5년) 무학대사가 3창하면서 심원사로 개칭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592년(선조 28년) 4창되어 서산대사의 법맥을 잇는 소요(逍遙), 태능(太能),제월(霽月), 경헌(敬軒) 등 조선 중기의 선승들과 수많은 학승들이 주석 정진하는 도량이 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사건 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쟁하던 의병과 관군의 공방전 속에서 장래의 화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관군에 의해 250여 칸의 건물과 1,602위의 불상이 잿더미로 변하면서 심원사는 완전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1909년부터 점차 복구되어 1937년 주지 이진학(李鎭學)의 노력으로 유점사 본말사지에 전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전인 천불전, 신신각, 춘향각, 요사채 등 모두 8동의 건물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화를 비껴가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전소되어 그 터만 남겨져 있던 것을 2003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와 더불어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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