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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심대장군묘(경기도 기념물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7. 7. 18:39

 

 

 

 

321번 도로에 있는 중동교와 상동교가 가까이 있다.

 

 

상동교에 3.5km가면 심대장군묘가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공사중이다.

 

 

우회전한다. 2.2km남았다고 안내되어 있다.

 

 

 

 

 

멀리 사당이 있다.

 

 

사당 앞에 있는 안내판이 양쪽에 있는데 이상하다.

 

 

 

 

전에 2.2km남았다고 했는데 더 멀은 3.5km 남았단다.

 

 

 또 같은 전봇대에 있는 안내판인데 반대편에는 2km 남았다고 되어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할지!!! 실제로는 약 1.2km 정도이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다.

 

답변

1. 귀하의 행복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2. 경기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에 애정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상담민원(접수번호 49297,49298. 2013. 7. 7)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신하여 드립니다.
     가. 건의내용 : 용인 ‘심대장군묘’ 안내판 내용의 거리 오기(각각 3.5㎞, 2㎞)정정 및 광주 ‘의안대군 방석묘’의 주소를 정확하게 명기할 것을 요청
     나. 회신내용 : 용인 심대장군묘의 안내판 내용의 거리관련사항은 용인시의  안내판 정비사업 시행 시 정정하도록 요청하였으며 광주 의안대군방석묘의 주소 또한  ‘경기도 광주시 중부읍 엄미리 산152번지’로 관련 자료를 정정하여 게시하도록 요청, 조치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끝.

 

 

사당 앞에 있는 심대 장군 신도비

 

 

완장2지 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저수지를 지나 심대장군묘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 적당한 곳에 주차하기를 권한다. U턴하기도 어렵고 작은 돌을 많이 깔아 놓아 바퀴가 헛돈다.

 

 

 

 

 

계단을 올라가면 심대장군묘가 있다.

 

 

 

 

묘가 2개가 있는데 심대장군묘는 오른쪽 것이다. 왼쪽 것은 누구의 것인지 안내가 없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충장공 심대(1546∼1592)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5년(1572)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1584년에는 지평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실 근왕병 모집에 힘썼으며, 그 공로로 우부승지, 좌부승지를 지내면서 왕을 가까이에서 모셨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자 선조를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으며, 그해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경기도 일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서울 수복 작전을 계획하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그의 머리를 베어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현재 묘역에는 묘 앞에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심대(沈岱)(1546∼1592)장군의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 시호는 충장(忠壯),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장군은 선조(宣祖) 5년(1572)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의주(義州)까지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였으며,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가 되어 적의 수중에 있는 경기지방과 왕도(王都)인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남하하던 중, 삭녕군(朔寧郡)(현 연천군)에서 왜적의 야습(夜襲)을 받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난(亂)이 평정된 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청원군(靑原君)에 추봉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문과 급제했는데 무신이라니???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030000,31&flag=Y

 

 

다음지도에 심대장군 묘소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1번 위치가 심대장군 묘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