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에 광주 의안대군방석묘역의 주소가 '중부면 엄미리 152'로 되어 있는데 엄미리 산152번지에 있네요. 그러나 산번지라 너무 넓어 엄미리701번지로 찾아가세요.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1. 귀하의 행복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2. 경기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에 애정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상담민원(접수번호 49297,49298. 2013. 7. 7)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신하여 드립니다.
가. 건의내용 : 용인 ‘심대장군묘’ 안내판 내용의 거리 오기(각각 3.5㎞, 2㎞)정정 및 광주 ‘의안대군 방석묘’의 주소를 정확하게 명기할 것을 요청
나. 회신내용 : 용인 심대장군묘의 안내판 내용의 거리관련사항은 용인시의 안내판 정비사업 시행 시 정정하도록 요청하였으며 광주 의안대군방석묘의 주소 또한 ‘경기도 광주시 중부읍 엄미리 산152번지’로 관련 자료를 정정하여 게시하도록 요청, 조치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끝.
광주 중부면소재지에서 43번 도로를 타고 하남방향으로 가다가 좌회전한다.
죄회전 후 약1.7km가면 우회전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는데 도로가 좁고 급커브라 조심하여 천천히 간다.
안내판 따라 좌회전.
전봇대 앞에서 우측으로 가는데 이곳에 적당히 주차하시기를...
개인집으로 가는 길이다.
등산로 안내도에 광주 의안대군방석묘역까지 1.05km, 30분 소요된다고 하여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없다. 260여m 밖에 안된다.
여기까지 포장되었다.
잡초가 우거져 있다.
우측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이성계의 8째 아들 의안대군(1382∼1398)의 묘이다. 의안대군은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이며, 태종의 이복 동생으로 이름은 방석(芳碩)이다. 아버지 이성계의 공훈으로 어린 나이에 고려 왕조에서 군기녹사(軍器綠事:군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직책)의 일을 맡았다. 조선 왕조가 개창되고 태조 즉위 초에 세자 책봉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조준·정도전 등에 의해 1392년 8월에 세자가 되었다. 이후 방원(뒤의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세자책봉과 정도전 일파의 권력 독점에 반대하여 일으킨 난) 때 피살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앞쪽이 부인 심씨의 묘소이고, 의안대군 방석묘는 뒤에 있다. 묘표는 많은 풍화작용으로 잘 보이지 않는데, 묘비 앞면에 각각‘유명조선국오원소도공묘’‘유명조선국대부인심씨’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황명정통 14년(1449년 세종 31년)에 세웠다’고 쓰여 있다 한다. 앞면 좌우에 각각 문인석 2기가 있고 향로석, 축대, 상석이 있다. 의안대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8남이며, 신덕왕후 강씨 소생으로 1392년(태조1) 조선국의 첫 번째 세자로 책봉되었다. 1398년(태조7)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은 이복형들에 의하여 제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 정도전 난)이 일어나 유배되던 중 5왕자인 이방원의 명을 받은 이숙번에게 피살되었다. 이후 1406년(태종 6) 8월 소도공라는 시호를 받았다. 1437년(세종 19) 6월 세종의 배려로 금성대군 유를 후사로 정하였고, 숙종6년(1680년) 의안대군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동복형인 무안대군 방번 역시 같이 죽었는데 방번도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 여가 후사를 이었다. 방번의 묘는 광평대군묘역 안에 있는데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의안대군 방석의 후사를 이은 금성대군은 친형 세조에게 반기를 들어 미움을 샀고, 무안대군 방번의 후사를 이은 광평대군은 일찍 요절하여 세조의 미움을 살 일이 없어 묘역이 잘 유지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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