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중요-시도 민속문화재

영동규당고택(중요민속문화재14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0. 14. 21:13

 

 

 

 

영동 규당 고택 배치도

 

 

우회전하라고 내비는 안내한다.

 

 

멀리 왼쪽에 규당고택 담장이 보인다.

 

 

주차공간이 있다.

 

 

 

 

 

 

문이 열렸을 때 벽과 충돌 하지 말라고 둥글게 짚으로 만든 것이 있다. 

 

 

 

 

 

 

 

 

 

 

 

 

  19세기 후기에 건축된 집으로 상당히 넓은 터전을 차지한다. 집 뒤쪽 길가에 서서 바라보면 맞담을 쌓은 길이가 꽤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ㄱ'자형 안채와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 모양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안살림에 해당하는 부분일 뿐,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공간은 많이 변형되어서 그 전체적인 원형은 알 수 없다. 안채는 큰 규모의 당당한 건물로 남도방식에 따른 안채에 사랑공간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일직선으로 놓이고 꺾어져서 작은방·마루방·아래사랑방·윗사랑방으로 구성되었다. 안방부터 작은방까지는 앞·뒤 모두 툇마루로 연결하였다. 사랑공간 또한 툇마루를 포함하고 있는 마루방을 통해 안채와 연결이 되고 있다. 광채는 부엌 왼쪽에 뒤뜰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꽤 고전적인 맛을 풍기는 건물이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지않아 관리가 필요하다. 안채 건넌방의 오른쪽에 마련된 뒷간은 작은 초가 사모지붕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아름다워 특히 인상적이다. 넓은 터에 더 많은 집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서 지금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지정 당시 명칭은 '영동송재휘가옥(永同宋在徽家屋)'이었으나, 가옥을 지은 송복헌의 호 ‘규당’을 따라 ‘영동 규당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 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이 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광채가 널찍이 둘러앉아 전체적으로 튼ㅁ자 모양을 이루지만 이것은 안살림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바깥살림에 해당하는 외부공간은 변형이 많이 진행되어서 그 전체적으로 원형을 알기는 힘들다. 건축년대는 망와의 기록에 따르면 을유삼월(乙酉三月)(1885년)과 병술삼월(丙戌三月)(1886년) 두 종류가 보이므로 19세기 말 건물로 생각된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남도방식에 따라 안채머리에 사랑공간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서쪽 아래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2간대청, 건넌방을 일직선으로 놓고 남쪽으로 꺾어져서 작은방, 대청, 아래·윗사랑방으로 구성되었다. 부엌은 전후퇴를 터서 쓰며 상부에는 다락을 시설했다. 측벽은 처마 밑을 이용하여 내밀어 쌓고 복판에 살강을 만들었다. 안방과 웃방은 4짝미서기로 구분하며 뒷퇴에는 각각 골방을 만들어 두었다. 웃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分閤門)으로 개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대청(大廳)의 앞쪽도 고주 사이에 분합문을 달았다. 앞퇴에는 안방에서 대청까지, 건넌방과 작은방에는 좌우퇴 모두에 툇마루를 깔았으며 뒤쪽에는 안방에서 건넌방까지 쪽마루를 놓았다. 건넌방 옆의 모퇴에는 역시 토광(장방(藏房))을 시설한 바 중부지역에서 자주보는 수법이다. 사랑방 역시 우퇴는 툇마루이고 안쪽에는 쪽마루를 깔았는데 툇마루가 사랑대청에서 연결되지 않고 출입문을 지나 구분되게끔 계획했다. 사랑대청의 안(좌)퇴는 토방으로 해서 굴묵공간으로 이용한다. 구조는 가로 세로 모두 2고주5량(대청 중앙만 1고주5량)으로서 납도리집이다. 도리 아래에는 장혀를 받쳤는데 종도리만은 장혀 밑에 헛창방을 보내고 사이에 소로를 끼웠다. 이것은 19세기 말에야 일반 살림집에서 쓰기 시작했던 기법이다. 회첨 처리는 회첨추녀 없이 서까래를 겹쳐 얹는 고식기법을 쓰며 기둥 높이과 마루 높이는 비교적 낮게 만들었다. 초석은 높은 화강암 네모주초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댓돌도 낮게 한벌로 돌렸다. 지붕은 합각골기와집인데 남도 풍습을 따라 내림마루 끝을 투박하게 올렸다. 광채는 부엌 서쪽에 뒤뜰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배치되며 맞걸이 3량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모두 11간의 ㄱ자형 집인데 전면 동쪽으로부터 부엌, 2간 구들로 되고 나머지 서쪽 날개는 광채로 쓰였던 듯 싶으나 보존상태가 나빠서 좀 더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치목 솜씨는 꽤 고전적 맛을 풍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안채 건넌방 동쪽에 마련되는 뒷간으로서 단간 초가 사모지붕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아름답다. 출입문은 판장문이고 벽도 빈지널이며 서까래는 네모꼴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1400000,33&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