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살기 시작하여 현재 11대손 까지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이곳은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한 여류 문인인 호연재 김씨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송병하의 며느리인 호연재 김씨는 여성 특유의 감성을 담은 많은 시를 남겼다. 안채와 큰사랑채·작은사랑채, 가묘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사랑채인 오숙재가 있다. 큰사랑채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안채 앞에 위치한 작은사랑채는 오른쪽 끝에 툇마루를 한단 높게 두어 운치를 살렸다.안채는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지나서 출입할 수 있다. 최근 대청에 유리덧문을 달아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안채의 뒤로 돌아가면 구릉 위에 가묘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가 2동이나 있어 사랑채의 기능이 확대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개방적인 배치를 하고 있어 기호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 건물은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의 둘째 손자 송병하(宋炳夏)가 분가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 11대손까지 살아오고 있는 고가(古家)로서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큰사랑채가 있고, 그 우측에는 작은 사랑채가 있다. 이 작은 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ㄱ자형 평면에 네모뿔 모양의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3량집으로 간결하게 꾸민 안채가 있다. 안채는 최근에 대청에 유리덧문을 달아 원형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안채의 뒷편에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만든 송씨가묘(宋氏家廟)란 편액이 붙어있는 사당이 있다. 큰 사랑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만들고 그 옆에 툇마루가 달린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 사이에 미닫이 문을 달았다. 안채 앞에 있는 작은 사랑은 앞면 8칸의 일자형 건물로서 오른쪽 끝에는 한단 높은 툇마루를 두어 운치를 살렸다. 울타리 밖 오른쪽에는 한 가운데 인공의 섬을 갖춘 큰 연못이 있어 풍치를 더해 주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송촌동주민센터 근처에 있는 동춘당공원안에 있다. 근거리에 보물209호인 대전 회덕 동춘당(http://blog.daum.net/dbsqkqh/3980)이 있다. 조그마한 동춘당 공원안에는 3개의 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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