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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황일호의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11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5. 13. 21:31

  처음부터 황일호의 묘를 찾는데 쉽지는 않겠다 싶었지만 역시나 U턴을 반복하고, 젊은 주민은 모른다하고, 어렵사리 연세가 많은 지역주민에게 도움을 받아 찾아가게 되었다. 사당 앞 주소인 '부여읍 가증리 49'로 찾아 가기를 권해본다.

 

 

  문화재청에는 황일호 묘소가 '부여읍 가증리 산12'로 되어 있다. 현장 안내판에 있는 가증리 산3번지가 옳은 것 같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작성자] : XX [전화번호] : 041-830-25XX

[답변내용] : 1. 부여군 문화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귀하께서 문의하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황일호의 묘 주소를 확인한 결과, 지적해주신대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에 위치하고 있어 기존 문화재청 홈페이지상에 '부여읍 가증리 산12번지'로 오기되어 있었던 주소를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로 수정하였습니다.

3. 홈페이지상의 주소 오기로 인해 불편하셨던 점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욱 철저하게 문화재정보를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부여군 문화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번 : 신도비

2번 : 사당

3번 : 황일호의묘

4번 : 황일호 묘소 입구인 가증2리 안내 입석

5 번: 송간초등학교

6번 : 금강장례예식장

 

붉은 점선따라 가다보면 신도비가 보인다.

 

 

왼쪽 나무가 있는 곳이 5번 송간초등학교다. 좀더 직진하면

 

 

4번 가증2리 입구 입석이 있다. 우회전한다.

 

 

나무 앞에서 좌회전한다.

 

 

 

 

 

신도비가 보인다.

 

 

 

부여 향토유적51호인 황일호신도비 및 황진효자각이다.

 

 

 

 

 

 

 

신도비를 지나

 

 

3번 위치 사당이다. 미리 주차한다.

 

 

안내판이 어떤일인지 없어졌다.

 

 

 

 

 

 

처음에는 사당 뒤에 황일호묘가 있는 줄 알았다. 시간만 낭비하고 뒤돌아 나왔다.

 

 

황일호 묘는 사진에서 3시 방향으로 간다. 처음에 10시 방향으로 가서 허탕을 쳤었다.

 

 

없는 길이다. 건넌다.

 

 

 

우측에 안내판이 보인다. 심봤다!

 

 

묘에 잡목이 많이 나있다.

 

 

 

 

 

 

 

 

 

황택조 묘이다. 황택조는 황일호의 고손자이다. 다음지도에는 황일호묘가 다른곳으로 되어 있다.

가계도를 보면 추포 황신(호판, 추포를 모신 창강서원, http://blog.daum.net/dbsqkqh/4677)지소 황일호(부윤, 황척의 아들, 황신에게 양자)철술당 황진(참봉)황하신(군수)황상로(정언)황택조()이다.

 

 

 

 

황일호 묘를 가는 방법을 되집어 본다. 사당 옆길이다.

 

 

우측에 비닐로 덮인 위로 건넌다. 사진 우측 중앙으로 올라 간다.

 

 

사진 우측 길 같이 보이는 곳으로 직진하여 올라가면 안내판이 보인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충절인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 선생의 묘소이다. 조수륜의 가르침을 받았고, 인조 13년(163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안전하게 모신 공으로 진주 목사에 올랐다. 인조 16년(1638) 의주 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돕자는 모의를 하다가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묘역 아래에는 정조 21년(1797)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송시열이 글을 짓고 황운조가 글씨를 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1110000,34&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