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대전 숭현서원지(숭현서원, 대전광역시 기념물2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8. 14. 15:08

 전민동에 지인이 있어 숭현서원 앞을 1년에 5번 이상 다녔지만 이제야 가보았네요. 마침 문화관광해설사 나선생님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담소를 나누다 왔지요. 서원을 복원했지만 문화재는 숭원서원지라고 등록되어있어요.

 

 

 

전민동에서 둔산지구로 가는 중인데 여기는 원촌삼거리 근처입니다. 서원은 오른쪽에 있다는 안내가 보입니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멀리 서원이 보입니다.

 

 

오른쪽에 큰 트럭이 있는 곳은 개인 주차공간이고 왼쪽에 주차합니다.

 

 

 

맨 앞에 있는 건물이 영귀루.

 

 

 

숭원서원 복원 건립기.

 

 

 

숭원서원묘정비. 현재비는 2001년 모사해 놓은 것이다.

 

 

  묘정비는 신흠(광주 신흠묘역및신도비, 경기도 기념물145, http://blog.daum.net/dbsqkqh/4153)이 짓고 우암 송시열이 덧붙인 것은 동춘당 송준길이 썼단다. 

 

 

 

 

숭원서원이라는 현판이 있는 건물이 입교당.

 

 

 

 

3개의 돌이 원래의 묘정비 받침돌이었단다.

 

 

 

 

 

 

 

 

 

선 안에 있는 다른 필체의 글씨는 파손된 곳이란다. 동춘당 송준길 글씨.

 

 

 

 

 

 

 

 

 

  숭현서원은 정광필·김정·송인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광필(14621538)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역임한 분이다. 김정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로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문에도 능하였고 조광조와 함께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송인수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헌부 대사헌과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성리학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16세기 후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 이 서원은 1592년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숭현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인조 19(1641)에 이시직과 송시영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는데 서원 안에 별도의 건물을 마련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1(1609)에 복원되었고 후에 김장생·송준길·송시열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1871)에 폐쇄된 후 복원하지 못하고 현종 8(1667)에 세운 비석만 남아 있다. 1994년 발굴 조사한 결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교육 장소인 강당, 이시직과 송시영의 위패를 모시던 별사 등의 건물 터를 확인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270000,25&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