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의령을 지낸 서필이다. 할아버지 서신일 때까지만 해도 이천 지방의 토착 호족이었는데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재상에 오르면서 중앙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 아들 서눌이 문하시중, 서유걸이 좌복야를 지냈고, 서눌의 딸이 현종의 비가 됨으로써 고려 사회의 주요 문벌귀족세력으로 등장했다.
서희장군묘는 산북면 후리 산53-1번지에 있지만 근처에 있는 주차장 주소인 산북면 후리 215번지로 찾아 가세요.
상품초등학교쪽에서 333호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약 1km가다보면 4시 방향으로 가라고 되어 있다.
다시 좌회전 한다.
서희와 서필의 신도비가 있다.
주차장이 보인다.
멀리 나뭇사이로 이정표가 보인다.
주차장이다.
돌계단으로 올라 간다.
5분정도 걸어가면 서흐장군묘가 보인다.
왼쪽 맨 위에 있다.
아랫쪽에는 서필의 묘가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서희장군묘이다.
되돌아 나오다 버섯사진을...
고려 초기의 외교가이며 문신인 장위공 서희(942∼998)의 묘소이다. 광종 11년(960)에 과거에 급제하여 광평원외랑을 거쳐 내의시랑에 올랐으며, 정치적 활동뿐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성종 12년(973)에 거란이 침입하여 압록강을 건너오자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하여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였다. 그후 청천강 이북에 있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강동 6주를 설치하여 평안북도 일대의 땅을 확보하였다. 그의 묘는 부인의 묘와 같이 있는 합장묘이고, 봉분 아래에 2단의 둘레석을 두른 형태이다. 쌍분의 가운데에 묘비가 서 있고,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있는 돌로 만든 등)이 1기씩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 1쌍씩 있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3단으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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