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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이종무장군묘(경기도 기념물25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11. 11. 09:08

 이종무장군은 대마도를 정벌했던 장군이다. 그때 아예 복속시켰어야했는데 왜 되돌려줬는지 안타깝다. 이종무장군께서 지하에서 땅을 발차며 우실것 같다. 이종무장군 묘에 찾아가기에 조금 애매하다. 용인에 근무하기에 그나마 쉬웠다.

 

 

 

 

 

분당쪽에서 찾아 가는 길이다. 좌회전한다.

 

 

 

다리를 건너 우회전한다.

 

 

 

고기2교 건너 좌회전한다.

 

 

 

다시 좌회전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우측에 있다는 안내판이 있다.

 

 

 

방향은 일반 가정집이다. 그쪽방향의 산에 있다는 뜻이다. 길은 없다. 진입로도 없으니 한심하다. 이곳에서 방황했다.

 

 

 

 

 

주인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앞마당을 지나 집 뒤로 갔다.

 

 

 

집뒤에 안내판이 있다.

 

 

 

뒤돌아 본 모습이다.

 

 

 

 

 

돌계단 따라 올라 가면 있다. 거리는 가깝다. 천천히 가도 10분 정도

 

 

 

 

 

 

 

 

 

마지막 돌계단이다.

 

 

 

 

 

 

 

 

 

억새 숲이 우거져 있다.

 

 

 

 

 

 

 

 

 

 

 

 

 

 

 

 

 

 

 

고려말 조선초의 명장인 이종무(13601425) 장군의 묘소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던 장군은 고려 우왕 7(1381) 20살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서 왜구를 격파하고 그 공으로 벼슬자리에 올랐다. 조선 태조 6(1397) 서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쳐 상장군에 올랐으며, 그 뒤 통원군·의주병마절제사·우군총제 등의 자리에 올랐다. 세종 1(1419) 왜구의 침입이 더욱 심해지자 조정에서는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대마도)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장군은 전함 227, 군사 1700여 명을 거느리고 쓰시마섬을 공략해 항복을 받고 돌아왔다. 쓰시마섬은 우리나라와 거리가 제일 가까운 일본의 영토로, 이종무에 의해 한때나마 우리 나라의 땅이 될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국력을 과시한 일이 되었다. 봉분의 앞면과 좌우면에는 직사각형의 돌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양 옆으로는 문인석 1쌍이 배열되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후대에 새로 세운 묘비가 서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25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