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여주 대로사비(경기도 유형문화재8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12. 14. 20:15

 여주 대로사비를 찾아 가는 방법은 강한사 찾아 가는 방법을 참조.

대로사(大老祠)1785(정조9)정조의 명에 의해 건립돼 1873(고종10) 강한사(江漢祠)로 개명됐다. 개명된 이유가 대로는 덕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여 존경할 만한 노인인 큰 어른 또는 큰 노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대로로 불리는 인물이 송시열과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두 분이 계셨는데하늘아래 태양이 둘일 수 없다고 하여 흥선대원군의 명에 의해 바뀌었다 한다.

 

 

 

 대로사 비가가 있는 곳이다.

 

 

 

 

 

강한사 옆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대로사 비가 있는 곳이 문 밖에 보인다.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제사를 모시는 대로사(大老獅)의 내력을 적은 비로, ‘대로선생에 대한 존칭이다. 송시열 선생은 인조 11(1633) 사마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을 지냈으며, 봉림대군(후의 효종)의 스승이기도 했다. 선생은 이곳 여주에 머무를 때마다 효종의 능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후배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했었다 한다. 정조가 영릉을 행차하다가 이 말을 전해 듣고 김양행에게 대로사를 짓도록 명하였다. 이는 노론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정조가 노론이 받드는 송시열을 높여줌으로써 노론의 불만을 달래려 한 정치적 의도를 말해준다. 대로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강한사(江漢祠)로 이름만 바뀐 채 화를 면하였다. 비는 네모난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앞면에 비의 명칭을 새기고, 나머지 면에는 비문을 새겼다. 정조 11(1787)에 세운 비로, 정조가 친히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84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