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양평 이준경선생묘(경기도 기념물9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6. 11. 4. 20:46




문화재청에 있는 주소인 '양서면 목왕로 308-41'는 넓다. 인근인 '양서면 부용리 294-2'로 찾아 가기를 권해본다. 이준경(14991572)의 할아버지는 이세좌이고, 아버지는 홍문관수찬 이수정이다. 이세좌는 성종 때 승정원 좌승지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사사하라는 명을 받고 금부도사와 함께 사약을 들고 갔다. 이때 할머니는 우리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면서 염려했다 한다. 할머니 염려대로 이준경이 6세 때인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로 할아버지 이세좌와 아버지 이수정이 사사되고, 형인 이연경(14841548), 이윤경(14981562) 등 온가족이 괴산으로 유배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외가에서 성장했으며 조광조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이준경의 셋째 아들 양호당 이덕열은 그의 사촌형제 이유경(李有慶)에게 양자로 갔다. 이덕열의 아들 이사성은 허균의 맏사위이다.


1. 이준경 선생묘

2. 양호당 이덕열 선생묘

3. 이준경, 이덕열 신도비

4. 이준경 선생 사당

5. 이준경선생 묘소 입구




사당 안내가 보인다. 묘소는 조금더 직진한다.


오른쪽 길로 간다.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오른쪽으로 올라 간다. 비탈길로 올라 간후 주차해도 된다. 넓은 공간이 있다. 지도에서 5번 위치이다.







 경기도 기념물96호로 등록된 것이 1987.02.12인데 아직도 향토유적5호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밑에서 셋째줄을 보면 마을 입구에 신도비가 있다고 되어 있다. 신도비를 보기 위해 사당이 있는 곳까지 가보았다. 그런데 찾지 못했다. 안내 전화 번호가 있기에 전화해보니 옛 신도비는 오래전에 도난 당해 없단다. 일본 사람이 가지고 간것 같다고 하니 일제시대 인것 같다. 한심한 안내판이다.



도승지 양호당 이덕열은 이준경 선생의 셋째 아들이다.



왼쪽 것이 이준경 선생 신도비이고 오른쪽 것이 양호당 이덕열 선생 신도비이다.



이준경 선생의 묘소는 오른쪽으로 올라 간다.




계단 오른쪽에 보이는 묘소가 양호당 묘소이다. 이준경 선생의 묘소는 왼쪽에 있다.








이준경 선생 묘소에 가는 계단이다.










이예세(李涗) 묘인데 어느 분인지 모르겠다.




상석이 특이하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구 신도비를 찾기 위해 사당으로 가보았다.



이준경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각종 사화 속에서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려 애쓴 동고(東皐) 이준경(14991572) 선생의 묘소이다. 중종 26(1531) 문과에 급제하였고 1533년 홍문관 부수찬이 되어 기묘사화 때 죄를 받은 선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권신 김안로 일파의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 뒤에 다시 등용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명종 5(1550) 영의정 이기의 모함을 받아 보은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명종 20(1565) 영의정에 올랐다. 1567년 명종이 죽자 선조를 왕으로 세우고 국정을 보좌하였다. 이 때 기묘사화로 죄를 받은 조광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을사사화로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한 노수신 등 인재를 석방하여 다시 등용하는 공적을 세웠다. 부인과 함께 장사지낸 합장묘이며, 긴 돌을 이용하여 봉분 아랫부분을 둘렀다. 묘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있으며, 상석 앞에는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고,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문인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근래에 세운 것인데, 원래의 비문은 노수신이 지어 선조 18(1585)에 세운 것으로 마모가 심해 현재는 수원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96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