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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구암한백겸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165호)

천지연미소바위 2016. 9. 13. 15:04

 

 

 한백겸(1552~1615)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 본관은 청주, 자는 명길, 호는 구암이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 영의정 한상경의 7대손이며 한상경의 손자인 좌찬성 한계희(http://blog.daum.net/dbsqkqh/1282, 한명회의 사촌)5대손이다. 1579(선조 12) 두 동생 한중겸, 한준겸과 함께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면서 과거를 포기했다. 1589년 정여립의 시신을 거두어 염을 해준 일이 발각되고,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과 가깝다는 이유로 함경도에 유배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사면되었다. 한백겸의 아들인 한흥일이 아들이 없자 서평 부원군 한준겸의 손자 한이명을 후사를 삼았으나, 일찍 죽어서 한이명의 아내가 양천현령인 재종 한석명의 아들 한후상(韓後相)을 양자로 들였는데, 늦게 아들 한기명이 태어나자 한기명에게 승중(承重)을 명하고 한후상을 손자로 삼았다. 한후상(1637~1711)은 숙종대의 문신이다.

조부 : 한여필

: 한효윤

아들 : 한흥일

: 홍비(洪棐)와 결혼

동생 : 한중겸, 서평 부원군 한준겸

증손자 : 한후상

조카딸 : 인열왕후 한씨, 인조의 정비

 

 한흥일(1587 선조20~1651 효종2)은 실학의 선구자 한백겸의 아들로 척화파이다. 1637년 봉림대군(후일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배종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우승지, 강원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간, 공조판서·예조판서, 지춘추관사, 우의정를 지냈다. 인조실록편찬에 참여했다.

 

 

묘역 안내 

맨위 : 19세 구암 한백겸, 증정경부인능성구씨, 정부인함창김씨 묘

중간 : 17세 문천공 한여필, 문화류씨 묘

맨 아래 : 22세 한후상, 숙인 한산이씨 묘


 

신륵사를 구경하고 구암 한백겸 묘 및 신도비를 찾아 가는 중이다. 부평교차로에서 우측으로 간다.

 

 

직진하다보면 안내판이 보이고 왼쪽으로 다리를 건넌다.

 

 

건너온 다리인 가마교이다.

 

 

한백겸 신도비가 왼편에 보인다. 규모가 크다. 묘는 신도비 뒷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있다.

 

 

 

 

거북이 머리가 뒤로 돌리고 있다.

 

 

 

 

 

 

 

작게 보이는 것이 할아버지 한여필 묘비이고 크게 보이는 것이 아들 한흥일 신도비이다.

 

 

한여필 묘비이다. 묘는 한백겸 묘 아래에 있는데 왜 여기에 세웠는지?

 

 

  한흥일 신도비이다. 신도비가 여기에 있으니 필경 묘소도 근처에 있을텐데... 한백겸, 한여필, 한후상 묘만 보고 왔다. 

 

 

한백겸 묘소는 보이는 길로 올라 간다.

 

 

 

증손자 한후상 묘이다.

 

 

 

할아버지 한여필 묘이다.

 

 

 

 

 

맨 위에 있는 한백겸 묘이다. 할아버지 묘가 손자 묘 아래에 있다.

 

 

 

 

 

 

 

 

 

맨 위에 한백겸 묘가 있고, 그 아래 한여필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