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기타

양평 김여지 선생묘(양평 향토유적 4호)

천지연미소바위 2016. 11. 5. 23:19

김여지 묘는 연안김씨 묘역에 있다. 맨위에는 5세 김광후 공과 동복오씨 제단. 그 아래 김군석(金君錫)과 부인 청송심씨 묘. 그 아래 6세 김도(金濤 자는 장원, 호는 나부산인) 분묘와 죽성부인 묘. 그 아래 김여지와 형인 김자지의 묘가 있다. 6세손 김도(金濤)는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우왕 때 밀직제학을 지냈다. 아들 김자지, 김여지, 김치지(金致知, 예빈사윤), 김학지(金學知, 도관찰사)가 있다. 큰 아들 이름이 거시기하다.



현장 안내판에 김여지 선생의 묘소가강하면 왕창리 산 27’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강하면 왕창리 산 26’위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에 잘못 되어 있다.



1. 김여지 선생묘

2. 김자지 선생묘

3. 6세 김도(金濤)와 죽성부인 묘

4. 김군석(金君錫)과 부인 청송심씨 묘

5.  5세 김광후 공과 동복오씨 제단

6. 7. 8은 김상원묘 참조(http://blog.daum.net/dbsqkqh/5461)


인터넷에 김상원묘를 김여지 선생 묘로 되어 있다. 본인도 편의상 김상원 묘에 표시했다.




지도에서 10번 위치이다.




능곡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한다.






주차장이 있다 '강하면 왕창리 522-3'이다. 지도에서 9번이다.



좌회전 한다.



좌회전 한다. 지도에서 11번 위치이다.






김여지 선생묘이다. 오른쪽에는 형인 김자지 선생묘이다.(http://blog.daum.net/dbsqkqh/5460)




서계 이씨, 초계 정씨와 합장했는데 두 부인의 제단비를 보면 부인묘는 실전된 것 같다.



6세 김도(金濤 자는 장원, 호는 나부산인) 분묘와 죽성부인 묘









김군석(金君錫)과 부인 청송심씨 묘






5세 김광후 공과 동복오씨 제단







김여지(1370~1425) 선생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호는 창주, 자는 자행, 밀직제학 도의 아들이다. 창왕1(1389) 문과에 장원한 뒤 정언·사헌규정 등을 역임했다. 조선 태종 때 장령·예문관직제학·집의를 거쳐 충청도 도관찰사·대사헌·공조판서·예조판서에 올라 문란했던 호패법을 개정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판한성부사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세종7(1425) 예조판서·참찬을 역임했다. 시호는 문익이다. 묘는 부인 서계 이씨, 초계 정씨와 합장했는데, 높이 135cm3단 사대석으로 다듬어진 장방형 묘라는 점에서 특색을 지닌다. 묘는 정면 2.79m, 측면 2.10m이며 봉분 높이는 1.35m이다. 묘 정면에는 2기의 작은 묘비, 상석·향로석, 좌측에 새로 건립된 묘비, 그리고 문인석·동자문인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 앞의 화강암 소형 구비는 앞면에 의정부좌참찬 시문익공 김여지지묘라 음각되었고, 뒷면에는 홍희을사라는 기명으로 보아 세종7(1425)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 좌측의 대형 묘비는 옥개와 비좌를 갖추었는데, 앞면의 비문은 구비와 동일하다. 신비의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45cm, 56cm, 두게 28cm의 규모이다.(출처 : 현장 안내판


 고려시대 실존 인물의 민망한 이름 

-왕자지(王字之, 1066~1122)의 본관은 해주. 고려 중기 문신. 1108(예종3) 병마판관으로 윤관 휘하에서 척준경과 함께 함주·영주에서 여진을 무찌름. 딸이 이자겸의 며느리로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켜 패하자 유배당함.

-신보지(申寶至, ? 1196)는 고려 시대 중기의 무신, 정치인명종 때 장군, 어사중승수사공 상서 좌복야 역임.

-장보지(張補之)의 본관은 순천.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 공민왕 때의 공신.  

-김자지(金自知, http://blog.daum.net/dbsqkqh/5460) 김여지의 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