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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율리영축사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4호)

천지연미소바위 2021. 1. 21. 19:33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직선거리로 1km 나짓한데 돌아가야기에 멀다. 문화재청에 주소가 청량읍 율리 822’로 되어 있는데 면적이 넓어 찾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근처인 청량읍 율리 955’로 찾아가다보면 영축사지 안내판이 있다. 여기에 주차공간도 있다.

왼쪽에 멀리 영축사지가 보인다.
철망으로 둘러쳐 있다.

 

이 길로 찾아 왔다.

 영축사지(靈鷲寺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의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말단부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83(신문왕 3),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忠元公)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屈井縣) 현청(縣廳)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왕께 아뢰어 현청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2012년 울산박물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 전,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삼층석탑 부재가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고, 남쪽에는 귀부(龜趺)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서 영축명 기와편이 채집되었다. 발굴조사(1) 결과, 통일신라시대 금당지 1, 서탑, 중문지 1, 석등의 하대석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금당지를 중심으로 쌍탑이 위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임을 알 수 있었다. 금당지는 정면 5, 측면 5칸의 정방형 구조로, 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을 만큼 특이한 형태이다. 서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이 외 석등 하대석과 정면 3, 측면 1칸의 중문지가 확인되어, 금당지--석등-중문지라는 기본 가람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비석편, 금동불상 등이 출토되었다. 영축사지는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에 상당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