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논산 미내다리(충청남도 유형문화재1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4. 12. 16:26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긴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마차꾼, 봇짐장수 등 많은 이들이 이 돌다리를 드나들며 바닥돌을 닳게 했을 터이나, 지금은 높은 제방에 가려 수풀이 무성한 가운데 그 모습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출처 : 문화재청)

 

 

  논산에서 강경으로 가다가 강경읍내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상강경교입구에서 좌회전하여 강경천 제방따라 1km 남짓 가다보면 다리가 보이고 주차장이 있다. 일명 조암교라하며 현재 미내다리는 미내천에서 유래함. 얼마나 유명했던지 염라대왕이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 미내다리를 보고 왔느냐고 질문한다함. 다음지도에는 다른 곳에 표시되어 있고 문화재청 홈피를 보면 '지금은 높은 제방에 가려 수풀이 무성한 가운데 그 모습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정리가 잘되어 있다. 문화재청을 보면 주소도 채운면 삼거리 541번지로 되어 있다. 아마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 항상 우리 도지정 문화재에 애착을 가져주심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건의하신 미내다리 관련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문을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내다리는 위치가 이전된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 수로(물길)정비에 따라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끝부분이 이렇게 수정하였네요.

‘일제 강점기 수로정비에 따라 물길이 바뀌어 현재는 제방 제내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8년 완전해체하여 2003년 보수정비 하였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虹예)로 이루어진 석교(石橋)로 처음에는 평교였다. 3개의 홍예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은데, 받침은 긴 장대석(長臺石)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홍예석을 돌려 만든 형식이다. 가운데 홍예의 정상부 종석(宗石)에는 호랑이 머리를 선각(線刻)하였고 북쪽 홍예의 정상에는 용머리를 새겼으나, 남쪽 정상에는 장식이 없다. 부근 암반에 은진미교비(恩津渼橋碑)가 있었는데 파손되어 근년(近年)에 부여박물관으로 옮겼다. 비문에 의하면 이 다리는 조선(朝鮮) 영조(英祖) 7년(1731) 강경촌(江景村)에 살던 석설산(石雪山) 송만운(宋萬雲) 등이 주동(主動)이 되어 공사에 진력한 지 1년이 못 되어 완공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사용치 않고 있으며 길이는 30m, 폭 28m, 높이 4.5m이며 석재(石材)는 화강암(花崗岩)이다.(출처 : 문화재청)

 

 

 

 

 

 

 

 

 가까운 곳에 미내다리와 비슷한 원목다리(충청남도 유형문화재10호, http://blog.daum.net/dbsqkqh/59)가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110000,34&queryText=((V_KDCD=21)) <and>(((V_NO >=11)<and>(V_NO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