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 691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108호)

줄나무는 길가나 도로변에 줄처럼 길게 심어져 가로수 역할을 하는 나무들을 말한다. 함평 향교리 줄나무는 향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옛날 도로변에 심어져 있으며, 팽나무 10그루, 개서어나무 52그루, 느티나무 15그루와 푸조나무, 곰솔, 회화나무 각 1그루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나무의 나이는 대략 350살 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평 대동면에 줄나무가 심어지게 된 것은 풍수지리학상 함평면 수산봉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그 재앙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나무는 무안 청천리의 팽나무와 개서어나무의 줄나무와 이곳 밖에 없다. 특히 이곳의 줄나무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부터 벌판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이..

함평해보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171호)

해보리 석불입상은 함평읍 함평리 2번지에 있는 관음사 경내에 있다. 보호수 매실나무 석축 솜씨가 대단하다. 전라남도 함평 군민회관 앞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함평군 해보면 해보리 산 61번지에 있었다고 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갖춘 서 있는 석불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알맞게 살찐 계란형의 얼굴은 온화한 모습이다. 눈·코·입이 뚜렷하여 사실적으로 보이며, 목에는 1줄의 선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져 있고, 몇 개의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은 평면적이며 도식화되었다. 손모양은 두 팔을 구부려 가슴 앞에서 ㅅ자 모양으로 두 손을 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화순 운주사 석불군에서 보여지는 양식으로 주목된다. 연..

함평이재혁가옥(전라남도 문화재자료250호)

누군가가 주차의 어려움을 말했는데 길가에 주차가능해여.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실례를 했네여. 이재혁 가옥은 정성을 들여 잘 지어진 사랑채로 외부재료나 형식으로 보아 근대적 성격을 띤 주거건축이다. 현재 안채는 없어지고 외부공간인 정원과 더불어 사랑채와 문간채만 남아 있다. 상량문에 의한 사랑채의 건립 연대는 1917년으로 확인되었다. 외부재료를 근대적 재료인 유리창으로 마감한 것이 흠이지만, 전통 한옥이 근대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 단계의 가옥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고, “ㄱ”자형 사랑채 건립은 이 지역에서 매우 보기 드문 예이다.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 은거(1898년경)와 관련한 장소로서의 의미도 있는 곳이다. 이 가옥은 함평이씨 이동범(李東範, 1869∼1940)이 20세기 초반..

함평보광사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172호)

계단으로 올라간다 범종은 왼쪽에 있다. 조용하며 인기척이 없다. 일주문 근처에 아름다운 꽃이...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

구 함평성당(국가등록문화재)

1952년 건립 이 건물은 194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1년에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의 지원으로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1952년에 완공되었다. 1층에는 성당의 교육 및 사회적 공간으로, 2층에는 순수한 미사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미사공간은 내부 공간의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정면 중앙에 솟아있는 8각 종탑이 특징적이다.(출처 : 문화재청)

함평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122호)

고분군 입구에 주차장이. 발굴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혹시 이곳도 고분. 발굴중으로 이곳에 주차를. 표산마을 뒤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4∼5세기경의 독무덤(옹관묘)과 5∼6세기경의 돌방무덤(석실묘)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독무덤의 항아리 파편들은 모두 영산강유역 특유의 U자형 전용 항아리관 파편들이다. 돌방무덤군(석실고분군)은 ‘왕무덤’, ‘8장수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봉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9기이다. 특히 대형무덤인 1, 2호 무덤은 봉분의 정상이 서로 이어져 표주박형태를 하고있다. 현재 무덤은 입구가 매몰된 상태이고, 정상부의 함몰된 남쪽부분에서는 판석이 노출되어 있어 돌방무덤이 분명하나 그 규모나 구..

함평 구 학다리역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

급수탑 주변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1921년 건립된 이 시설물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급수탑이다. 급수 시설로서 34년 동안 철도 운송에 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디젤기관차로 대체되면서 1955년에 급수탑의 기능을 잃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석조 원형탑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이 같게 구성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통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철도 시설물로서 가치가 높다.(출처 : 문화재청)

곤재우득록목판(전라남도 유형문화재146호)

자산서원쪽으로 우회전한다. 자산서원 안내판 곤재 정개청 시비 외삼문(대도문) 윤암정사 유물관 내삼문(겸허문) 윤암사(사당) 조선 중기의 학자인 곤재 정개청(1529∼1590)의 문집을 널리 간행하기 위해 숙종 15년(1689)에 왕의 특명으로 시작되어 숙종 18년(1692)에 완성된 목판이다. 정개청은 어린 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의약 등의 학문을 열심히 익혔다. 그후 서경덕을 스승으로 박순과 교류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으며, 명종 20년(1565)에 함평군 엄다면 제동 마을로 귀향하여 향리에서 학생들을 양성하였다. 그후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20여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우득록』3권과『수수기』9권 뿐이나 현재는『우..

함평 월호리 일본식 가옥과 창고(국가등록문화재)

함평답사를 계획하면서 가장 어렵게 생각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주인 어른이 대문을 장그는 순간 도착하여 관람을 요청하니 흔쾌히 안내해 주었다. 이곳에 주거하지는 않고 마당에 모(벼)를 키우고 있어 물주고 가던 참이란다. 등록문화재 118호 외쪽이 일본식 가옥이고 오른쪽이 창고이다. 벽면 함석은 예전 것이고 지붕은 다시 개량한 것이란다. 출입문을 열어 구경하게 하였다.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주인의 허락하에 에 집에 들어가 보았다. 2층에 올라 가는 계단이다. 다다미는 얼마전에 일본에서 공수해 왔단다. 가옥 1927년, 창고 1930년 건립 이 건물들은 일제 강점기 영산강 중천포 나루터 근처에 지은 일본인 지주의 집과 창고이다. 곡물 수송에 아주 편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창고의 기능이 강조되었으며,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