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 691

함평용천사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

22년 5월에 가본 모악산에 있는 함평 용천사 석등이다. 대웅보전 우측에 석등이 보인다. 용천사 용천 용천사 내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은 연꽃무늬를 두르고, 가운데기둥을 받고 있는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거북형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8각의 가운데기둥은 각 면에 글씨를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8각으로,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윗돌을 받도록 하였다.각의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화사석을 받고 있다. 화사석은 조선시대의 일반형인 4각으로, 면마다 사각이 둥근 창을 두어 독특하고 아름답다. 지붕돌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습을 한 팔작지붕을 본뜬 형태로, 매우 두껍..

함평양재리의이팝나무(전라남도 기념물 117호)

22년 5월에 가본 함평 양재리 이팝나무가 멀리 보이네요. 주변에 3개의 비가 있네여. 이팝나무란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덥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하며,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입하목에서 입하나무를 거쳐 오늘의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함평 양재리의 이팝나무는 두 그루가 지정되어 있는데, 한 그루는 높이가 14m, 둘레는 3.04m이며, 다른 하나는 높이 12m, 둘레 1.43m로 차이가 크다. 크기로 보아 큰 것은 나이가 2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작은 것은 100년 정도 될 듯하다. 즉 10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심은 것으로 추측된다. 양재리에 사는 모수택씨 소유인 수정재 뒤편 동산에 ..

함평죽암리고분(전라남도 기념물152호)

22년 5월에 가본 고분이다. 함평읍의 손불면과 신광면이 교차되는 지점으로 ‘떼등이’라 불리는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현재는 넓은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지만 바다쪽에 제방을 쌓기 전에는 바닷물이 무덤 앞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무덤은 북동쪽이 타원형의 원형부이고 남서쪽이 사다리꼴의 네모형을 하고 있는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 형태이다. 함평 죽암리무덤은 영산강 유역의 전남지방에서만 발견되는 무덤으로 일본의 전방후원 무덤과 유사한 점이 많아 두 나라의 고대사와 무덤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출처 :문화재청)

함평금산리방대형고분(전라남도 기념물151호)

22년 5월에 가본 곳이다. 발굴중이다. 근처에 윤씨 문중의 묘가 있다. 안내판은 고분 직전 오른쪽 산기슭에 있다. 함평군내 함평읍, 대동면, 신광면이 교차하는 삼거리 낮은 구릉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이다. 형태는 피라미드형으로, 규모는 긴 변 약 50m, 짧은 변 약 40m, 높이 약 10m 정도이다. 봉분 위에는 길이 1.8m, 높이 0.6m의 판돌이 노출되어 돌방(석실)의 벽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규모가 작아 다른 무덤 형태가 내부에 같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깬돌을 이용해 봉분을 덮은 흔적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이러한 즙석식 무덤은 고구려 고분이나 한강유역 무덤에서 나타나는 희귀한 형태이다. 금산리무덤들은 전남지방 무덤 중 최대급에 속하는 것이며, 즙석식 무덤이란 특이..

함평진양리화동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230호)

2번에 주차하고 주민에게 물어 본 후 걸어서 찾아 갔다. 사진 촬영하려면 걸어서 가란다. 주민 덕분에 쉽게 찾았다. 언덕길로 올라간다. 큰 소나무 왼편으로 올라간다. 안내판이 보인다. 함평영화학교가 보인다. 뒤돌아오면서 사진을... 사진 중앙쪽으로 올라간다. 금산리 고분이 입지하는 구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해발 40m 내외의 구릉은 다시 높아져 해발 86m의 야산을 이루는데 화동은 야산의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분은 마을의 서쪽에 있는 산기슭의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해발 86m의 야산이 완경사를 이루며 남쪽으로 내려오는 곳으로 동쪽으로는 함평천 주변에 형성된 평지가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서해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성 산지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2기의 고분이 동서로 2∼3m 정도의 간격을 두..

함평대덕리고양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231호)

대덕리고양고분군를 찾는데 좀 힘이 들었다. 지도에 위치 표시도 좀 애매하다. 본인은 시계방향으로 갔다. 길도 매우 좁다. 결론부터 말하면 1호분은 1번, 2호분은 2번 위치에 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 무작정 3번 위치에 주차하고 찾기로 했다. 머리 숲속에 안내판이 보인다. 1호분이다. 되돌아 나오면서... 2호분을 찾기 위해 4번 위치에 주차하고 되돌아 가는 중이다. 2호분은 사진 중앙쯤에 있다. 4번 위치이다. 오른쪽길로 올라간다. 풀이 우거져서 좀 그렇다. 안내판이 보인다. 뒤돌아본 모습이다. 고양 마을 서쪽에 있는 중봉(해발 134.5m)은 남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해발 99m의 산을 형성하고 점차 낮아지는데 해발 50m 정도까지는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그 이하로는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동쪽으..

함평 기각리 붉가시나무 자생북한지(천연기념물110호)

사진 중앙에 붉가시나무가 보인다. 함평문화원으로 찾아간다. 사진 오른쪽에 함평문화원이 있다. 본인은 아치 안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 갔다. 풀이 우거쳐 있다. 붉가시나무 나무가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안내판이 안보인다. 아래쪽에 안내판이 보인다. 경사가 심하다. 사진 중앙으로 내려가면 쉽다. 함평문화원 직원왈. 사진 중앙인 아치 왼쪽으로 올라 가면 된단다. 그러나 풀이... 붉가시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추위에 약해서 주로 산기슭과 계곡의 양지에서 자란다. 재질이 단단하고 잘 쪼개지지 않으며 보존성이 좋아서 가구나 선박 등을 만드는데 이용된다. 붉가시나무라는 이름은 그 목재가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붉가시나무는 우리나라의 난대림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상록수로 제주도와 남쪽 해안지방에 주로 분포..

영파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168호)

사진 중앙에 영파정이 보인다. 주변 도로가 넓어 주차 가능하다. 함평천에 멋있는 왕버들 두그루가 있다. 오른쪽 나무가 100년된 왕버들이다. 100년된 보호수 왕버들 세조 1년(1455)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영파정 이안(1414∼?)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건물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1450∼1460년대로 추정한다. 그 후 영파정은 함풍 이씨 가문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1597) 중에 불에 타 없어진 후 영수정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며, 1820∼1821년 사이에 군수 권복과 김상직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지었다. 그 뒤 고종 20년(1883) 크게 보수하고, 1966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함평척화비(전라남도 문화재자료176호)

함평 척화비는 함평읍사무소 북측에 있는 함평공원에 있다. 읍사무소나 함평장례예식장 근처에 주차한다. 함평중앙교회가 있는 경사진 길로 올라 간다. 척화비는 끝 무렵에 있다. 기미 3.1 의거 열사 기념비 함평천 건너 함평중학교와 함평교육청이 보인다. 나라와 겨레위한 얼의 탑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끌면서,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더욱 강력히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비의 규모나 크기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그 내용만은 똑같이 쓰도록 하였다. 함평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에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

함평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113호)

대성전이 명륜당 보다 앞에 있네요.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다른 나무가 자라고 있네요.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2년(1599)에 초가집으로 다시 지었으나 위치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인조 3년(1625)에 현 위치로 옮겼다. 지금의 건물들은 근래에까지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건물배치는 평지일 경우 제사공간이 배움의 공간 앞에 오는 전묘후학의 형식을 따르며, 경사지일 경우 배움의 공간이 앞에 오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곳은 흔치 않은 예로 전묘후학의 형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