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문화재 17

동해 구 삼척개발 사택과 합숙소(국가등록문화재)

22년 1월에 가본 동해 구 삼척개발 사택과 합숙소. 정문이다. 처음에는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 찾아 갔다. 아무리 찾아도 안내판이 없다. 왼쪽에 있는 건물들이다. 넓은 공간에 주차하니 한쪽에 안내판이 있다. 일제 강점기 민간회사의 사택으로, 직급과 기혼자와 미혼자를 구분하여 구성한 근대기 근로자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높다.(출처 : 문화재청)

동해 신재공 심동로 신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149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신재공 심동로 신도비. 북평 해암정(여행&사진 (daum.net))과 관련이 있다 이 비는 고려말 문신인 信齋公 沈漢의 神道碑이다. 심한이 1361년(공민왕10)에 벼슬을 버리고 삼척으로 낙향하자 공민왕이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東老”라는 이름을 내렸으며, 후에 眞珠君에 봉하여졌다. 비는 동해시 발한동 시가지 도로변에 접하여, 도로를 제외한 주위가 민가에 둘러싼 비각 안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高麗禮儀判書號信齋沈公神道碑銘’이라는 篆이 있고, 전면에는 신재공의 선조와 공의 내력, 후면에는 기문과 후손의 이름을 기록하였으나 측면에는 내용이 없다. 비문은 사헌부대사헌 겸 경연관원자우유선인 李城輔가 撰하고, 글씨는 前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지제교인 李錫祐..

동해 구 상수시설(국가등록문화재 142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구 상수시설. 동해시 농업기술센터 안에 있다. 동해시농업기술센터에 주차하고 왼쪽으로 가면 있다. 일제강점기 산업시설로 당시의 기술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및 근거가 되며, 최근까지 정수시설로 사용되어 온 시설로서 보존상태가 비교적 우수하다.(출처 : 문화재청)

용산서원 학규현판(강원도 유형문화재78호)

22년 1월에 가보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문화재청에 주소가 '동해시 쇄운동 357'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주소입니다. 쇄운동 202-1이나 200-6으로 찾아가세요. 용산사 용산서원 학규현판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조선 숙종 31년(1705) 이세필이 삼척부사로 있으면서 삼척의 학문을 일으키기 위해 용산서원을 창건하고 학규 21조를 제정하여 이것을 손수 써서 판각한 것으로, 오늘날의 교칙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학규현판은 피나무판으로 가로 156㎝, 세로 48㎝의 크기이다. 용산서원은 그후 고종 5년(186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가 1966년 이곳의 사림들이 유서가 깊은 서원이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건물로 새로 지어놓았다. 이 현판의 글씨는 글자 모양이 가장 반듯한 ..

동해 향운암 소장 천지명양수륙잡문(강원도 문화재자료)

22년 1월에 가본 동해 향운암. 조그만 암자인데 보수 중이다. 아래 사진출처 : 문화재청 이 책은 수륙무차평등재 때에 필요한 문(文), 표장(表章), 방(榜) 등의 여러 가지 문식(文式)들을 모아 정리한 불교의례서이다. 천지명양수륙잡문의 원본은 중국의 소연(蕭衍)이 지은 ?수륙의문(水陸儀文)이며, 1303년 원나라 무외(無外)가 이를 완보(補完)하였다. 수륙의문은 ‘자기(仔夔)’ㆍ‘지반(志槃)’ㆍ‘중례(中禮)’ㆍ‘결수(結手)’라 하였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기’ㆍ‘지반’ㆍ‘중례’ㆍ‘결수’ 등은 각각 모두 간본(刊本)이 있었다. 1463년(세조 9)년 중국에서 구하여 1464년 주자(鑄字)로 수십건을 인출하고 어찰(御刹)에 하사하여 봉행토록 하였다. 성종조에는 금강산 표훈사에 수륙..

동해 해암정(강원도 유형문화재63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해암정(북평해암정). 식당 앞에 주차하고 걸어서 간다. 식당 주차장인지 공용인지 모르겠다. 지도에서 1번이다. 2번주차장은 좁고 주차료 받는다. 3번이 해암정이고 4번이 추암이다. 추암이 있는 추암해변 방향으로 간다. 추암은 보이는 숲 너머에 있다. 해암정은 왼쪽에 있다. 사진 중앙에 해암정이 보인다.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제자를 가르치며 생활할 때 지은 정자로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처음 짓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다시 지었다. 심동로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고려말의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다가 권력을 잡고있던 간신배들이 마음에 들지않아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왕은 그를 말렸으나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

동해 북평성당(국가등록문화재)

22년 1월에 가본 동해 북평성당(북평천주교회). 성당 주소인 구미동 489로 찾아 가시지 말고 구미동 505-4로 찾아 가세요. 성당 정문이 이쪽 근처에 있어요. 본인 내비가 잘못 안내해서요. 주민에게 정문을 여쭈어 보고 찾아갔네여. 1959년 건립한 시멘트블럭 건물로 6.25전쟁 이후 시대적 배경 속에서의 건축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성당 본당으로서의 건축적 양식 및 구조적 특징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고, 원형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강원 영동지역에서 갖는 천주교사적 의미와 함께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동해 심의관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82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심의관 고택. 예전에는 동해심상열가옥이었지요. 지금은 빈집인가 봅니다. 뒷쪽의 나지막한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집은 약 25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곳간에 의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뜰이 있다. 안채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一자형 겹집이다. 오른쪽에 부엌을 두고 4개의 방이 있으며, 안뜰 쪽으로 2칸의 방앞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부엌에 연결된 곳간과 마굿간이 사랑채 쪽으로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대문이 있다. 사랑채는 ㄴ자형으로 5칸 규모이며, 왼쪽으로는 안채와의 사이에 대문칸과 행랑방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높게 배치하고 사랑채와 부속건물들은 ..

동해 김진사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83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김진사 고택. 전에는 동해김형기가옥이었지요. 주인이 사는것 같은데 인기척도 없고, 안내판도 대문 안에 있어 염치 불구하고 실례를 했네여. 오래된 소나무 숲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김형기씨의 11대조부터 살기 시작한 곳으로 조선 영조 2년(1726)에 지었으며, 그 후 많은 수리를 거쳤고 1922년에도 보수를 하였다. 행랑과 대문으로 구성된 별채는 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는 ㅁ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안채는 겹집의 형태이다. 가운데에 있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씩 방이 있으며, 대청 뒤쪽으로 1칸씩을 나누어 제실과 마루방을 두었다. 대청의 중앙 앞면 기둥만 원기둥으로 처리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대청의 천장은 목재가 다 드러나..

동해 용산서원전적류일괄(강원도 문화재자료 140호)

22년 1월에 가보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문화재청에 주소가 '동해시 쇄운동 357'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주소입니다. 쇄운동 202-1이나 200-6으로 찾아가세요. 아래 사진출처 : 문화재청 용산서원은 조선 숙종(肅宗) 31년(1705) 삼척 부사 이세필(李世弼 )이 창건하여 교학에 힘썼으며, 그 뒤 여러번 중수되어 오다가 고종(高宗) 5년(1865) 대원군(大阮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撤廢)되었던것을 1966년 이 고장에서는 유서 깊은 서원(書院)이라 하여 이곳 사림(士林)들에 의하여 1966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동해 용산서원 소장 전적류는 동해서원의 운영에 대해 규정한 전적들로, 18세기 삼척지방에서의 생활사와 교육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