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문화재 13

함평진양리화동고분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230호)

2번에 주차하고 주민에게 물어 본 후 걸어서 찾아 갔다. 사진 촬영하려면 걸어서 가란다. 주민 덕분에 쉽게 찾았다. 언덕길로 올라간다. 큰 소나무 왼편으로 올라간다. 안내판이 보인다. 함평영화학교가 보인다. 뒤돌아오면서 사진을... 사진 중앙쪽으로 올라간다. 금산리 고분이 입지하는 구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해발 40m 내외의 구릉은 다시 높아져 해발 86m의 야산을 이루는데 화동은 야산의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고분은 마을의 서쪽에 있는 산기슭의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해발 86m의 야산이 완경사를 이루며 남쪽으로 내려오는 곳으로 동쪽으로는 함평천 주변에 형성된 평지가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서해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성 산지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2기의 고분이 동서로 2∼3m 정도의 간격을 두..

함평 기각리 붉가시나무 자생북한지(천연기념물110호)

사진 중앙에 붉가시나무가 보인다. 함평문화원으로 찾아간다. 사진 오른쪽에 함평문화원이 있다. 본인은 아치 안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 갔다. 풀이 우거쳐 있다. 붉가시나무 나무가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안내판이 안보인다. 아래쪽에 안내판이 보인다. 경사가 심하다. 사진 중앙으로 내려가면 쉽다. 함평문화원 직원왈. 사진 중앙인 아치 왼쪽으로 올라 가면 된단다. 그러나 풀이... 붉가시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추위에 약해서 주로 산기슭과 계곡의 양지에서 자란다. 재질이 단단하고 잘 쪼개지지 않으며 보존성이 좋아서 가구나 선박 등을 만드는데 이용된다. 붉가시나무라는 이름은 그 목재가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붉가시나무는 우리나라의 난대림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상록수로 제주도와 남쪽 해안지방에 주로 분포..

영파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168호)

사진 중앙에 영파정이 보인다. 주변 도로가 넓어 주차 가능하다. 함평천에 멋있는 왕버들 두그루가 있다. 오른쪽 나무가 100년된 왕버들이다. 100년된 보호수 왕버들 세조 1년(1455)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영파정 이안(1414∼?)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건물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1450∼1460년대로 추정한다. 그 후 영파정은 함풍 이씨 가문에서 관리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유재란(1597) 중에 불에 타 없어진 후 영수정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며, 1820∼1821년 사이에 군수 권복과 김상직이 현재와 같은 규모로 지었다. 그 뒤 고종 20년(1883) 크게 보수하고, 1966년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함평척화비(전라남도 문화재자료176호)

함평 척화비는 함평읍사무소 북측에 있는 함평공원에 있다. 읍사무소나 함평장례예식장 근처에 주차한다. 함평중앙교회가 있는 경사진 길로 올라 간다. 척화비는 끝 무렵에 있다. 기미 3.1 의거 열사 기념비 함평천 건너 함평중학교와 함평교육청이 보인다. 나라와 겨레위한 얼의 탑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끌면서,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더욱 강력히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비의 규모나 크기에 대한 규정은 없으나 그 내용만은 똑같이 쓰도록 하였다. 함평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에 비몸의 윗변을 둥글게 다듬어 놓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들이 ..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천연기념물108호)

줄나무는 길가나 도로변에 줄처럼 길게 심어져 가로수 역할을 하는 나무들을 말한다. 함평 향교리 줄나무는 향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옛날 도로변에 심어져 있으며, 팽나무 10그루, 개서어나무 52그루, 느티나무 15그루와 푸조나무, 곰솔, 회화나무 각 1그루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나무의 나이는 대략 350살 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평 대동면에 줄나무가 심어지게 된 것은 풍수지리학상 함평면 수산봉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그 재앙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나무는 무안 청천리의 팽나무와 개서어나무의 줄나무와 이곳 밖에 없다. 특히 이곳의 줄나무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부터 벌판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이..

함평해보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171호)

해보리 석불입상은 함평읍 함평리 2번지에 있는 관음사 경내에 있다. 보호수 매실나무 석축 솜씨가 대단하다. 전라남도 함평 군민회관 앞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함평군 해보면 해보리 산 61번지에 있었다고 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갖춘 서 있는 석불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알맞게 살찐 계란형의 얼굴은 온화한 모습이다. 눈·코·입이 뚜렷하여 사실적으로 보이며, 목에는 1줄의 선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져 있고, 몇 개의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은 평면적이며 도식화되었다. 손모양은 두 팔을 구부려 가슴 앞에서 ㅅ자 모양으로 두 손을 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화순 운주사 석불군에서 보여지는 양식으로 주목된다. 연..

함평보광사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172호)

계단으로 올라간다 범종은 왼쪽에 있다. 조용하며 인기척이 없다. 일주문 근처에 아름다운 꽃이...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

구 함평성당(국가등록문화재)

1952년 건립 이 건물은 194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1년에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의 지원으로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1952년에 완공되었다. 1층에는 성당의 교육 및 사회적 공간으로, 2층에는 순수한 미사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미사공간은 내부 공간의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정면 중앙에 솟아있는 8각 종탑이 특징적이다.(출처 : 문화재청)

함평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122호)

고분군 입구에 주차장이. 발굴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혹시 이곳도 고분. 발굴중으로 이곳에 주차를. 표산마을 뒤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4∼5세기경의 독무덤(옹관묘)과 5∼6세기경의 돌방무덤(석실묘)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독무덤의 항아리 파편들은 모두 영산강유역 특유의 U자형 전용 항아리관 파편들이다. 돌방무덤군(석실고분군)은 ‘왕무덤’, ‘8장수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봉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9기이다. 특히 대형무덤인 1, 2호 무덤은 봉분의 정상이 서로 이어져 표주박형태를 하고있다. 현재 무덤은 입구가 매몰된 상태이고, 정상부의 함몰된 남쪽부분에서는 판석이 노출되어 있어 돌방무덤이 분명하나 그 규모나 구..

함평 구 학다리역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

급수탑 주변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1921년 건립된 이 시설물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급수탑이다. 급수 시설로서 34년 동안 철도 운송에 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디젤기관차로 대체되면서 1955년에 급수탑의 기능을 잃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석조 원형탑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이 같게 구성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통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철도 시설물로서 가치가 높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