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소이다.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감제조를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으며, 도장을 새김에 있어서도 뛰어나 인보(印寶:임금의 도장)를 새기기도 하였다. 그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애도의 정이 극에 달하여 곧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현재 묘역에는 그와 화순옹주가 합장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曾祖父)인 김한신(金漢藎)은 1720(숙종 46년) 영의정(領議政) 김흥경(金興慶) 아들로 태어나 13세때에 영조(英祖)의 장녀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로 봉해졌다. 추사선생 일문(一門)을 흔히 월성김문(月城金門)으로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 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시호는 정효공(貞孝公)이다. 김한신(金漢藎)이 38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和順翁主)는 애도(哀悼)의 정(情)이 극에 달하여 곧 부군을 따라 세상을 떠나셨다. 옹주는 부마의 묘에 합장(合葬)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영조의 사위,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 아버지인 영의정 김흥경묘는 500여m 떨어져 있는 용궁리백송(천연기념물106호, http://blog.daum.net/dbsqkqh/1265) 뒷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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