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예산 김정희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188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1. 8. 21:30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묘이다. 일찍이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가 되어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으며,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여 밝혀냈다.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헌종 2년(1836) 성균관 대사성에 올랐다. 그러나 윤상도의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헌종 6년(1840)에 제주도로 9년간 유배되었다가 헌종 말년에 귀양에서 풀렸다. 제주도에 지내면서 그 동안 연구해 온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철종 2년(1851)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또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만에 풀려 돌아왔다. 그 뒤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에 지내면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묘지는 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추사의 옛 집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2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묘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추사고택 주변에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고 고조부인 김흥경묘 추사묘 등이 있다. 추사묘는 추사고택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 2단으로 정지한 후 안치되어 있다. 묘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묘의 바로 오른쪽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장방형의 화강석재 대좌위에 오석의 비신이 올려져 있고 오석위에는 옥개형 이수를 올렸다. 비신의 전면(前面)에는 "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라고 각서되어 있고 나머지 3면에는 비문이 적혀있다.(출처 : 문화재청)

 

 

   아래 안내판에는 추사고택에서 서쪽으로 200여m 떨어져 있다고 되어 있는데... 정남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진(거의 정남향), 직선거리로 110여m에 있음.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사이에 있다.  문화재청에 민원하니 민원이 예산군청으로 이관되어 예산군청 담당자가 시인하고 수정한단다.

 

 

  추사고택 안내도에 있는 방위표시도 잘못되어 고치기로함. N아니고 W(서)로 해야됨. 추사고택(충청남도 유형문화재43호), 예산용궁리백송(천연기념물106호), 화순옹주홍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45호), 월성위김한신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189호) 등과 함께 이지역 일대가 김정희유적(충청남도 기념물24호)으로 지정됨.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1880000,34&queryText=((V_KDCD=31))%20<and>(((V_NO%20>=188)<and>(V_NO%20<=%20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