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광주 김균선생묘(경기도 기념물105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11. 9. 11:39

  조선의 개국공신인 김균(?∼1398) 선생의 묘이다. 고려 공민왕 9년(1360)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공양왕 때에 전법판서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2인으로 정해져서 중추원 부사로 승진되고 익대개국공신이라는 공신이름을 받았으며, 계림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숭록좌찬성에 이르렀고, 죽은 뒤에 제숙의 시호가 내려졌다. 가족 중에 태조의 공신이 많이 배출되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진급 정치집단을 이루었다. 묘역은 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각 1쌍씩 배열되어 있다. 상석의 왼쪽에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쪽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비문은 송병선이 짓고 윤용구가 글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 묘역의 건립 시기는 18세기 후반으로 보이며, 묘비는 그 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김균(?∼1398)을 모신 유택이다. 묘역은 곡담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은 앞부분에 장대석으로 호석(護石)을 쌓아 놓았다. 봉분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을 위치한다. 상석과 장명 등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석물 중 상석·향로석·장명등은 근래에 새로이 설치한 것이다. 상석의 좌측에는 묘비가 있으며, 묘역의 전방 약 80m 지점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송병선(宋秉璿)이 찬(撰)하고 윤용구(尹用求)가 글을 쓰고 김영한(金寧漢)이 전액(篆額)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의 묘역이 실전(失傳)되었다가 이 묘역이 있던 고을 유수(留守)로 온 후손 김사목(金思穆)이 수소문하여 찾았다고 기록되어, 현재 묘역의 건립시기는 18세기 후반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묘비 역시 그 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김균은 고려 공민왕(恭愍王) 9년(1360)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고 공양왕(恭讓王) 때의 관직은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이르렀다. 조선의 개국 때에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3등 15명 중 제 2인으로 책훈되어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의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계林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가족 중에 태조(太祖)의 공신이 많이 배출되어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진급 정치 집단을 이루었다. (출처 : 문화재청)

 

  상촌 김자수(http://blog.daum.net/dbsqkqh/1272)는 고려가 망한다고 자결했고 김균은 개국공신이라.....

 

 

 

  내비 안내 받으며 가다보면 교회도 있고, 절도 있고. 가파른 좁은 언덕길 오르면 오른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저멀리 김균선생묘가 보이네요

 

 

 

신도비(http://blog.daum.net/dbsqkqh/1270)는 묘 앞 8시 방향에 있음.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1050000,31&queryText=((V_KDCD=23))%20<and>(((V_NO%20>=105)<and>(V_NO%20<=%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