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서산 둔당리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6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2. 13. 20:22

   지석묘는 청동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서산 둔당리의 얕은 야산에 있는데, 원래는 2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1기가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고인돌도 일제시대에 도굴되었다고 한다. 형태상 바둑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8m, 너비 3.0m이며, 받침돌이 3개이다.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지석묘는 우리나라 청동기문화(靑銅器文化)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상(地上)에 커다란 돌을 올려 봉분(封墳)으로 삼는 형태인데, 거석분(巨石墳)을 특징으로 한다. 이같은 지석묘를 고인돌, 들은돌 혹은 상여바위라고도 하며 대개가 하천유역(河川流域)이나 해안평야지대(海岸平野地帶)에 밀집해 있다. 둔당리 지석묘는 남방식(南方式)으로 매장부(埋葬部)를 지하(地下)에 두고 지상(地上)에는 커다란 돌을 몇 개의 작은 돌로 괴어 놓은 형식이다. 지석묘에서는 무문토기(無文土器) 홍도(紅陶)·마제석검(磨製石劍)·석촉(石鏃)·동검(銅劍)·동촉(銅鏃) 등이 출토(出土)되며 당시 사람들의 생활양식(生活樣式)과 정신세계(精神世界) 및 묘제(墓制)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문화적(文化的) 유산(遺産)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설명 중 시작부분이 겹지네요.

 

 

문화재청에는 주소가 둔당리산25-5로 되어 있어, 간월암을 보고 이주소로 찾아가니 청구아파트 106동 옆으로 안내하네요. 현장안내판과 주소가 다르네요.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 민원인(윤여일 님)께서 지적하신 문화재 안내판 오류사항에 대하여, 
해당 문화재(안내판)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인 서산시 문화관광과에 민원사항에 대한 공문을 
발송하였고, 조속한 시일 내에 정정하도록 조치함

 

 

 106동 오른쪽 후문으로 나가 전봇대 옆으로 올라가고

 

 

오른쪽으로 돌아

 

 

저멀리 지석묘가 보이네요

 

 

 

 

 

 

  구경하고 서산시로 가다보니 왼쪽으로 올라가라는 안내판이 있네요. 옆에는 둔당1리 안내판도 있고. 주소가 달라서 그런지 아파트로 들어가서 구경을 했네요.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630000,34&queryText=(`둔당리`)<in>z_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