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유형문화재,기념물

강릉 황산사(강원도 유형문화재58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9. 2. 12:34

 황산사는 충무공 최필달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00년대 초에 문중과 유림이 논의하여 짓게 되었다. 고려 개국공신 중 한 사람으로 강릉 최씨의 시조인 충무공은, 그 당시의 학문을 바로 세우고 예를 가르친 문무를 겸한 학자로서 ‘해동부자(海東父子)’라고 불렸다. 황산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사당의 경내에는 문정공 최수성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문정묘가 있다. 후손인 최명수와 진사 정채화 등이 1936년 남문동에 건립하였는데, 주변에 주택 등의 건물이 들어섬에 따라 198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최수성은 문장·글씨쓰는법·그림에 뛰어났으나 김전·남곤 등의 모함으로 조선 중종 16년(1521)에 죽음을 당한 현인이다. 문정묘는 황산사와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규모는 조금 작다. 이 사당은 충무공(忠武公) 최필달(崔必達)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한 곳이다.공은 강릉(江陵) 최씨의 시조(始祖)로서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창업(創業)을 도운 개국공신(開國功臣)이며,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군(封君)되었다.당시의 학문(學問)을 정립(定立)하고 예(禮)를 가르친 문무(文武)를 겸한 학자로서 해동부자(海東父子)라 일컬었다고 한다. 경내의 문정묘(文正廟)는 인종(仁宗) 원년(元年)(1544)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된 문정공(文正公) 최수성(崔壽성)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는 문장(文章), 서법(書法), 화격(畵格)에 뛰어났으나, 김전(金銓), 남곤(南袞) 등의 모함에 걸려 중종(中宗) 16년(1521) 10월 신변(身)과 함께 죽음을 당한 명현(名賢)이다.1936년 후손인 최명수(崔明洙)와 진사(進士) 정채화(鄭寀和) 등이 남문동(南門洞) 179번지에 황산사비와 함께 건립한 것을 1982년 이곳으로 이전 신축하였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中丁)에 차례(茶禮)를 행한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580000,32&queryText=((V_KDCD=21)) <and>(((V_NO >=58)<and>(V_NO <= 58)))&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