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유형문화재,기념물

강릉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7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9. 7. 22:00

  조선시대에 7가지 공무(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를 보았던 관청건물이다. 처음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뒤,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대의 청사로 쓰였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부사 조명하가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부터 1958년까지 군수나 시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ㄱ자형 구조로 앞면 왼쪽에 본 건물보다 높은 누마루를 연결하였다. 누마루 연결부분에는 다락방을 두었고 본 건물 왼쪽 1칸에는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두고 온돌방과 툇마루를 좌우에 두어 대청마루와 연결시켰다. 칠사당은 전체적으로 뒤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이 집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관공서(官公署) 건물(建物)로 일곱 가지 정사(政事)(호적(戶籍), 농사(農事), 병무(兵務), 교육(敎育), 세금(稅金), 재판(裁判), 풍속(風俗)에 관한 일)을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이라 불리었다. 이 건물의 건립년대(建立年代)는 확실치 않으나 인조(仁祖) 10년(1632)에 중건(重建)하고, 영조(英祖) 2년(1726)에 크게 중수하였으며, 고종(高宗) 3년(1866)에 진위병(鎭衛兵)의 영(營)으로 쓰이다가 이듬해에 화재(火災)로 타버린 것을 강릉부사(江陵府使) 조명하(趙命夏)가 중건하였다. 일제시대(日帝時代)에는 일본의 수비대(守備隊)가 있었고 뒤에 강릉군수(江陵郡守)의 관사(官舍)로 쓰이다가 6·25 때 민사원조단(民事援助團)에서 일시 사용한 바 있으며,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어 왔었다.(출처 : 문화재청)

 

칠사당에 갔을때가 1년쯤되었는데 이제는 모두 수리했는지.

 

 

 

 

 

 

 

2012. 10월에 가보니 세계무형문화축전에 칠사당도 정신없네요.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070000,32&queryText=(`칠사당`)<in>z_title&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