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유형문화재,기념물

강릉 향현사(강원도 유형문화재8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9. 8. 20:48

 강릉지방의 인물 가운데 이 지방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분들(향현)을 모신 사당이다. 조선 인조 23년(1645)에 강릉부사 강백년과 김충각·김성원 등이 논의하여 향현들의 행적과 얼을 후세에 전하고자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강릉 대화재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21년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처음에는 최치운·최응현·박수량·박공달·최수성·최운우의 위패를 모셨는데 그 뒤 순조 2년(1802)에 최수, 순조 8년에 이성무·김윤신·박억추·김열·김담을 더하여 모두 12향현을 모시게 되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사당 이외에 대문과 재실·직사 등이 있다. 이곳은 강릉지방(江陵地方)에서 나온 인물(人物) 가운데 주민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는 분들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원래 이 사당은 조선(朝鮮) 인조(仁祖) 23년(1645)에 부사(府使) 강백년(姜柏年)과 김충각(金忠慤), 김성원(金聲源) 등이 논의하여 향현(鄕賢)들의 행적과 얼을 후세(後世)에 전하고자 건립(建立)한 것으로 처음에는 최치운(崔致雲), 최응현(崔應賢), 박수량(朴遂良), 박공달(朴公達), 최수성(崔壽成), 최운우(崔雲遇)를 모시었다. 순조(純祖) 2년(1802)에 최수(崔洙)를 더 모시었고 순조 8년(1808)에 이성무(李成茂), 김윤신(金潤身), 박억추(朴億秋), 김열(金說), 김담(金譚)을 추향(追享)하여 모두 12향현을 모시었다. 고종(高宗) 4년(1867) 강릉부(江陵府)중의 큰 화재로 재해를 당하였다가 1921년 봄에 후손들의 발의로 현 건물을 지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대문과 재실(齋室)이 5칸, 직사(直舍) 8칸으로 되어 있다.(출처 : 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39호인 계련당(http://blog.daum.net/dbsqkqh/2584) 옆, 강릉 명륜고 뒷편에 있다. 찾아가는 방법도 계련당이 있는 이명교차로로 가야한다.

 

 

 

문화재청에는 교동238-3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것이 옳은지?

  

 

담장 밖에서 멀리 본 후 나오는데 

 

 

주민이 보이는 대문으로 들어가 관람하란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080000,32&queryText=((V_KDCD=21)) <and>(((V_NO >=8)<and>(V_NO <= 8)))&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