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평택 홍학사 비각(경기도 문화재자료5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0. 4. 15:45

  조선 인조 때 삼학사(三學士) 중 한 사람인 홍익한(1586∼1637) 선생의 비를 보호하고 있는 건물이다. 홍익한 선생은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이 청나라와 화의를 맺자는 것에 끝까지 반대하다 윤집, 오달제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하였다. 1964년 처음 지었고 1982년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 다시 세웠는데 포의각이라고도 한다. 선생의 묘소 앞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고, 앞쪽 부분에 1964년 비각을 세울 당시의 일들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崔鳴吉)이 주장한 화의론(和議論)에 극구 반대하다 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화포 홍익한(花浦 洪翼漢)선생의 비를 보호하는 건물이다. 1964년 본정리의 삼거리 부근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1982년에 비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면서 다시 건립하였다. 이 비각은 포의각(褒義閣)이라고도 하는데 본정리 마을 뒤쪽의 꽃산에 있는 선생의 묘서 앞에 자리잡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익공계(翼工係) 맞배집인데, 사방에는 벽체 없이 홍살만 시설되어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낮은 장대석(長臺石)기단에 놓은 높은 사각 초석(楚石) 위에 민흘림기둥이 세워져 이익공이 결구되고 삼량(三樑)의 지붕 가구가 짜 올려져 있다. 익공과 첨차(기둥 머리나 소로에 얹혀 두 개가 직각으로 교차하여 십자맞춤으로 짜여져 올라가 공포를 형성하는 부재), 화반 등의 세부는 18세기의 형식을 모방한 것이다. 내부에는 선생의 신도비(神道碑)와 묘비, 아들 수원(수元)의 묘표와 홍익한의 증손자 대성(大成)의 묘표가 있으며 상부에는 1964년의 비각 창건 사실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비각은 최근에 건립된 것으로 건축사적 측면에서 크게 의미 있는 건물은 아니다.(출처 : 문화재청)


홍학사 비각이 경기도문화재자료5호라는데 이 비각이 최근에 건립된 것이라니.... 

 

  오달제(http://blog.daum.net/dbsqkqh/1609)의 경우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차고 있던 요대와 주머니만 묻었다는데 홍익한 묘는 궁금하네요.

 

 

 

왼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소나무 숲사이로 비각이 보인다.

 

 

 

 

 

 

 

 

 

 

 

 

 

  윤집, 오달제(http://blog.daum.net/dbsqkqh/1609)와 함께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이 청나라와 화의를 맺자는 것에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삼학사 중 한사람인 홍익한 묘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31,00050000,31&queryText=(`홍학사`)<in>z_title&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