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괴산 정인지묘(충청북도 기념물3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 2. 21:57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고려사』, 『용비어천가』, 『태조실록』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학역재집』이 있다. 묘역 안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고 묘 아래에 세워졌던 서거정이 글을 지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없어져서 1958년에 다시 세웠다. 이곳은 학역재(學易齋) 정인지(鄭麟趾)(1396∼1478)의 묘소이다.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대표적인 학자(學者)·정치가(政治家)로서 태종(太宗) 14년(1414)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世宗) 때에는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 부제학(副提學) 등을 지내면서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恒) 등과 함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撰修)하고, 권제(權제), 안지(安止)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도 지었다. 계유정란(癸酉靖難) 때는 세조(世祖)를 도와 정란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이 되고 영의정(領議政)에까지 올랐다. 묘 아래에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에 다시 세웠다.(출처 : 문화재청)

 

 

 

  충주시 대소원면소재지에서 599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5km 정도 가다보면 괴산군 불정면 삼방삼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한다.

 

 

여기에 2.6km 가면 있다는 안내가 있다.

 

 

삼방리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182호, http://blog.daum.net/dbsqkqh/3173)가는 안내도 있고.

 

 

누가봐도 좋은 자리 무슨 기운이...

 

 

 

좌회전하라는 안내가 있지만 마침 공사중이라 U턴하여 우회전하였다.

 

 

 

 

 

 

앞에 있는 묘가 정인지 묘이고 뒤에는 정경부인묘이다.

 

 

 

정경부인묘.

 

 

 

 

 

 

  정인지, 김종서(http://blog.daum.net/dbsqkqh/3385) 두 분 모두 세종대왕에게 신임이 두터웠는데 한분은 세조인 수양대군에게 죽고 다른 분은 영의정까지 하고...  어느분을 본 받아야할지????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330000,33&queryText=((V_KDCD=23)) <and>(((V_NO >=33)<and>(V_NO <= 33)))&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