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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김관 묘소(충청북도 기념물146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 3. 20:00

  봉분 1기, 묘갈 1기, 석조재집, 난간석, 문인석 2기는 1417년 김관 사후 장례와 함께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묘비는 1750년(영조26년)에 세운 것이며, 혼유석, 상석, 향로석, 사자석 2기, 장명등 1기는 1985년 추가로 조성된 것이다. 3단으로 조성된 묘역의 제일 상단에는 예장석(禮葬石)이 둘러진 장방형 봉분 1기가 있고 바로 앞에는 齋집이라고 하는 기와집을 본뜬 1柱 石物이 있다. 석물 안에 작은 묘갈 1기가 있는데, 마모가 심하다. 재집 좌우에는 欄干石을 1칸씩 설치하였다. 재집 앞에는 1985년 조성한 혼유석, 상석, 향로석, 사자석 등이 있고, 봉분 향 우측에 1750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한단 내려와서 좌우에 1쌍의 文人石, 다시 한단 내려와 정면에 長明燈이 서 있다. 장방형 봉분으로 예장석(禮葬石)이 전후면 길이 390㎝, 양측길이 460㎝, 높이 30㎝이다. 묘비석은 비신높이 144㎝, 폭 62㎝, 두께 34㎝이다. 봉분 앞에 “齋집”이라고 하는 기와집을 본뜬 1柱 石物과 석물 안에 작은 묘갈을 세운 점, 재집 좌우 봉분 정면에만 欄干石을 1칸씩 설치한 특이한 형태이다. 김관(? 〜1417)은 고려말 判奉常寺事를 지낸 金仲房의 아들로 戶曹參議를 지냈으며, 후에 議政府 左贊成에 추증되었다. 김관의 장녀는 조선 太宗의 제1庶子로 孝嬪 金氏의 소생인 慶寧君 排의 부인이 되었다. 봉분 앞 석물이 특이하게 기와집을 본뜬?재(齋)집?형태의 석물과 석물 안에 작은 묘갈을 세웠다. 재집 좌우 봉분 정면에만 난간석(欄干石)을 1칸씩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석조구조물이 매우 희귀한 형태여서 조선시대의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 된다.(출처 : 문화재청)

 

    김관의 아버지는 판봉상시사 김중방이며 아들은 김흔지, 충청도도사를 거처 세조 때 좌익원종공신인 김보지, 김의지, 김억지가 있다. 두째 아들 이름이 좀 거시기 하다. 양평에 김자지(blog.daum.net/dbsqkqh/5460) 선생묘도 있다.

  시골 산번지라 김관묘에 찾아가는데 너무나 애를먹었다. 동네 사람에게 몇번이나 물어 수소문 끝에 찾아갔는데 안내판도 없었다. 묘는 크기가 작지만 특이한 형태다.

 

 

 

  괴산 지장리 석조여래좌상(충청북도 문화재자료27호, http://blog.daum.net/dbsqkqh/3278)에서 360m정도 더 직진하면 세곡마을에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한다. 

 

 

 

저멀리 현대식 기와집까지 간다.

 

 

 

 

 

  인삼밭이 있는 오른쪽 길로 간다. 자동차는 적당히 놓고 가야한다. 묘 주변에 자동차를 돌릴만한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

 

 

 

멀리서 본 김관묘. 인삼밭 위 오른쪽에 있는 묘가 김관묘이다. 주변에 묘가 많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시멘트 길은 끝이 나고 자동차를 돌릴만한 공간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도 묘를 찾는데 고생을 했다. 묘는 고추밭 왼편에 있다. 묘는 고추밭 끝쪽에서 왼쪽으로 간다.

 

 

 

김관묘가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특이하게 조성해 놓았네요.

 

 

 

 

 

 

 

 

 

김관묘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이것뿐.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1460000,33&queryText=((V_KDCD=23)) <and>(((V_NO >=146)<and>(V_NO <= 146)))&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