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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허목수고본(보물592-1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2. 12. 15:42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 원고본들이다. 허목은 전서체에 뛰어난 유학자이며, 23세 때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스승 정구로부터 퇴계의 학문을 이어 받아 다시 그 학문이 이익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매개체역할을 하였다. 유물을 보면『동해비첩』1책,『금석운부』2책, 『고문운부』9책으로 총 3종 12책이다. 이것들은 모두 허목의 대표적 전서체 작품들로서 그의 필체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동해비는 본래 ‘척주동해비’로 현재 삼척군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은 많이 유포되어 있다. 원래 동해비의 글씨는 현재의 비보다 더 컸는데 파도에 침몰되어 선생이 따로 작은 글씨로 써둔 것을 보고 다시 새겼다. 크기는 가로 32.7㎝, 세로 50㎝이다. 금석운부는 옛 금석문에 나타난 전서를 총망라하여 만든 전서자전으로, 석판으로 영인간행된 적이 있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고문운부는 옛 문헌 및 금석에 나타난 옛 전서문을 운별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를 쓰고 다음에 각 체의 고문과 전을 기입한 고문자전이다.『금석운부』는 금석자료에 한정되었으나 이 책은 고문헌까지 망라하였으므로, 내용이 더욱 방대하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儒學者)이며 서법(書法), 특히 전서(篆書)로 이름이 높던 허목(許穆)(1595∼1682)의 수필고본(手筆稿本)들이다. 종목별로 다음에 서술한다. ① 동해비첩(東海碑帖) 1책(冊) 첩장(帖裝) 50㎝ ×32.7㎝필자(筆者)는「전위동방제일(篆爲東方弟一)」이라는 평을 받을만큼 전서명가(篆書名家)인데, 그 전(篆)을 대표하는 것이 곧 이 동해비(東海碑)이다. 동해비(東海碑)는「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로 현재 삼척군(三陟郡)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拓本)은 세간에 많이 유포되고 있다. 동해비(東海碑)의 추기(追記)에 의하면 「처음에 세운 비는 현재의 비보다 글씨가 더 컸었는데 풍랑에 침몰되었으므로 선생이 따로 써 둔 소자본(小字本)에 의하여 다시 모각(模刻)하였다.」한 것을 보면 필자는 이 비의 고본(稿本)을 몇 가지로 써 두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② 금석운부(金石韻府) 2책(冊) 사본(寫本) 선장(線裝) 34.7㎝ ×22㎝고금석(古金石)에 나타난 전서(篆書)를 총망라한 전서자전(篆書字典)이다. 이 책은 석판(石版)으로 영인간행(影印刊行)된 적이 있었다. ③ 고문운부(古文韻府) 9책(冊) 사본(寫本) 선장(線裝) 34.5㎝ ×22.7㎝고문헌(古文獻) 및 금석(金石)에 나타난 고전문(古篆文)을 운별(韻別)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楷書)를 쓰고 다음에 각체(各體)의 고문(古文)과 전(篆)을 기입(記入)한 고문자전(古文字典)이다. 금석운부(金石韻府)는 금석자료(金石資料)에 국한되었으나 이 책은 고문헌까지 망라하였으므로 내용이 더욱 방대하다.(출처 : 문화재청)

 

 

  허목수고본(보물592-1호)은 국립춘천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특별전(강원의 위대한 문화유산, 2012.10.30~12.09)에서 촬영한 것이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5920101,11&queryText=((V_KDCD=12))%20<and>(((V_NO%20>=592)<and>(V_NO%20<=%20592)))&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