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전/유형문화재,기념물

부여 산직리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4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4. 28. 21:29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의 ‘바우재’또는 ‘쇠울’이라 불리우는 구릉에 동서로 2기의 고인돌이 나란히 있다. 동쪽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5.8m, 너비 3.7m의 크기이며, 하부구조는 모두 파헤쳐져 알 수 없으나 바둑판식으로 추정된다. 현재 동쪽과 북쪽 받침돌이 노출되어 있으며, 일부는 파괴되어 다른 곳으로 운반된 듯하다. 서쪽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약 5.8m, 너비 약 4.2m이며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 덮개돌이 수평을 유지하고 있고 하부에 매장구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제사를 드리는 제단(祭壇)의 기능을 가졌던 고인돌로 추정된다. 이곳에 있는 두 개의 지석묘는 우리나라 선사시대(先史時代)에 속하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살았던 사람의 무덤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지석묘는 후대에 와서 덮개돌인 개석(蓋石) 일부가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석묘의 하부 구조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알려져 있다. 즉 땅을 시체(屍體)가 안치될 수 있도록 적당히 판 토광(土壙), 돌로 짜서 만든 석관(石棺) 등 다양하며 출토되는 유물에는 돌칼(石劍), 돌촉(石鏃), 대롱처럼 생긴 구슬(管玉) 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때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왼쪽으로 가면 부여 송국리 유적(사적249호, http://blog.daum.net/dbsqkqh/4011)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부여 산직리지석묘(충청남도 기념물40호)가 나온다. 

 

 

주차시설이 넓게 되어 있다. 멀리 지석묘가 보인다.

 

 

 

 

 

 

 

 

바위를 자르려는 흔적이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400000,34&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