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승은 음관으로 녹사에 올랐다가 27세 되던해에 문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큰아들 황치신, 둘째아들 황보신, 영의정을 한 셋째아들 황수신이 있는데, 아들 모두 음서제도 벼슬길에 올랐다. 4부자 모두 음서제로 벼슬을 시작했던 셈이다. 음서제란 부모가 높은 벼슬을 사람의 자녀를 과거 시험 없이 벼슬길을 준 제도이다. 일명 낙하산 제도이다. http://blog.daum.net/dbsqkqh/4643
우측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좌측으로 간다.
우측으로 간다.
우측으로 다리를 건넌다.
건물 지나 좌측으로..
어느 곳으로 가도 되나 왼쪽길로 가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우측으로 올라 간다.
우측 경사길로 올라 간다.
사진 우측으로 황희선생 묘와 신도비가 보인다.
신도비
맞은편에 있는 황희선생의 아들인 황수신 묘(http://blog.daum.net/dbsqkqh/4643)에서 바라본 황희선생묘.
조선 왕조를 통하여 가장 명망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던 방촌(방村) 황희(1363∼1452) 선생의 묘소이다. 고려 공민왕 1년(138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학록을 지냈으며 고려가 멸망하자 한 때 시골에 은거하였으나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학관으로 제수되었고 이후 여러 직책을 두루 맡았다. 그는 태종의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6조의 판서, 대사헌 등 요직을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초기 국가 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태종 대의 관직생활을 통해 얻은 국정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을 토대로, 세종 대에는 20여 년간 나라살림을 총괄하던 의정부에서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4군 6진의 개척, 문예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성세(世宗盛世)에 크게 공헌하였다. 묘역은 3단으로 넓게 조성되었으며 봉분의 규모 역시 크다. 봉분의 아랫부분은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床石)과 향로석 등의 석물이 있다. 좌우에는 동자상과 문인석이 한쌍씩 있고, 묘역 아래에는 그의 업적을 기린 사적비와 1945년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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