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안산 이익선생묘(경기도 기념물 4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1. 5. 31. 16:05

 

 

 

 

 

 

 

 

 

 

 

 

이익은 25세가 되던 숙종 31(1705)에 과거에 응하였으나 시험장에서의 녹명(錄名, 과거 응시자의 자격을 심사해 응시원서를 접수하던 제도)이 격식에 맞지 않았던 탓으로 시험에 응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그 다음해 둘째 형 잠()이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는 소를 올린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옥사하게 되자, 벼슬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이익은 실증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학문에 접근하여 사회 현실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모든 학문은 실제 사회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저술하여 당시 지방제도·재정·경제·과거제도·학제·병제 등을 날카롭게 비판함과 동시에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실학적인 사상을 설파하였다. 묘역은 19675월 성호 이익선생추모회에 의해 정화되었다. 이때 묘비를 포함하여 상석, 향로석, 망주석이 새로 건립되었다. 봉분은 전()부인 고령신씨(高靈申氏)와 후()부인 사천목씨(泗川睦氏)와의 삼위합장묘(三位合葬墓)이다. 묘역 옆에는 사당인 첨성사(瞻星祠)와 재실(齋室,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시조나 증시조의 묘소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인 경호재(景湖齋)가 있으며, 묘역에 인접하여 성호공원과 성호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