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항주,소주,상해

소주 호구산(호구탑) 1

천지연미소바위 2011. 7. 20. 16:52

  소주의 상징인 호구탑(운암사탑)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는 높이 40m의 작은 호구산에 위치.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벽돌 탑. 풍경이 아름답고 고적이 많아서 吳中第一名勝이라고 함.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도소주이불유호구 내시감사(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소주에 와서 이 아름다운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호구에는 춘추시대에 소주를 도읍으로 했던 오(吳)나라 왕 합려(와신상담의 고사성어가 나오게 한 부차의 아버지)의 묘가 있음. 합려는 생전에 좋아하던 보검 3천 자루와 함께 이곳에 묻혔는데 3일째 되는 날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이... 석벽에는 別有頭天, 虎丘劍池등 글씨가 새겨있고 주위에는 云厓砂, 孫武子亭, 白蓮池, 点頭石, 冷香閣, 第三泉 등 유적이 있음.

 

 

 

 

 

 

 

 

  와신상담은 2500년 전 춘추시대 오나라의 부차와 월나라의 구천 사이에서 나온 사자성어. 오나라 합려는 적장자였는데 왕위는 사촌동생인 요에게 돌아갔다. 이때 초나라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자서가 도망쳐 찾아왔다. 합려는 오자서와 손잡고 요를 살해하고 BC 515년에 왕위에 올랐다. 아울러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를 중용하여 나라 힘을 키웠지만 월왕 구천과 전투로 BC 496년에 죽는다.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원수 갚으라고 유언. 부차는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으려고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와신(臥薪).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의 말을 듣지 않고 공격하다가 오나라에 패하여 회계산으로 도망갔으나 결국 항복하고 부차의 신하가 되었다. 부차의 온갖 수모를 겪으며 가까스로 신임을 얻어 인질에서 풀려난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항상 곁에다 동물의 쓸개를 걸어두고 쓴맛을 보며- 상담(嘗膽)- 복수의 칼을 갈았다. 구천은 부차를 안심시키기 위해 많은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부차에게 바쳤다. 그 중에 복수를 위해 특별히 훈련시킨 범려의 애첩인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부차는 밤낮으로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했다. 또 재상 오자서가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부차는 오히려 서시의 말을 듣고 오자서에게 누명을 씌워 자살할 것을 명했다. 오자서는 자살하면서 월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을 보겠다는 뜻으로 자기의 눈을 성문 위에 걸어둘 것을 유언하였다. 12년이 지난 BC 482년 봄 드디어 구천은 오나라로 쳐들어가 7년 전쟁 끝에 부차를 항복시켰다. 부차는 절강성 정하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고소산에서 자결했다. 전쟁은 미인계를 쓴 구천의 승리로 끝났지만 일등공신 범려는 구천과는 환난(患難)은 같이 할 수 있지만 영화(榮華)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구천 곁을 떠났다.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는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 미인 중 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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