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1 16

동해 김진사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83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김진사 고택. 전에는 동해김형기가옥이었지요. 주인이 사는것 같은데 인기척도 없고, 안내판도 대문 안에 있어 염치 불구하고 실례를 했네여. 오래된 소나무 숲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김형기씨의 11대조부터 살기 시작한 곳으로 조선 영조 2년(1726)에 지었으며, 그 후 많은 수리를 거쳤고 1922년에도 보수를 하였다. 행랑과 대문으로 구성된 별채는 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는 ㅁ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안채는 겹집의 형태이다. 가운데에 있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씩 방이 있으며, 대청 뒤쪽으로 1칸씩을 나누어 제실과 마루방을 두었다. 대청의 중앙 앞면 기둥만 원기둥으로 처리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대청의 천장은 목재가 다 드러나..

동해 용산서원전적류일괄(강원도 문화재자료 140호)

22년 1월에 가보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문화재청에 주소가 '동해시 쇄운동 357'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주소입니다. 쇄운동 202-1이나 200-6으로 찾아가세요. 아래 사진출처 : 문화재청 용산서원은 조선 숙종(肅宗) 31년(1705) 삼척 부사 이세필(李世弼 )이 창건하여 교학에 힘썼으며, 그 뒤 여러번 중수되어 오다가 고종(高宗) 5년(1865) 대원군(大阮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撤廢)되었던것을 1966년 이 고장에서는 유서 깊은 서원(書院)이라 하여 이곳 사림(士林)들에 의하여 1966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동해 용산서원 소장 전적류는 동해서원의 운영에 대해 규정한 전적들로, 18세기 삼척지방에서의 생활사와 교육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1292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 삼화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시멘트로 만든 대좌 위에 머리로부터 가슴과 배, 등판을 붙여 안치했던 것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철불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듯하며, 얼굴에는 비교적 살이 올라 통일신라시대의 풍이 엿보인다. 가늘고 길게 뜬 눈, 오똑한 코, 두툼한 입술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도식적이며, 복부까지 속이 드러나 허리띠와 드리워진 매듭이 보인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복원하였다. 복원과정 중 오른쪽 등판면에서 약 10행 161자로 된 글을 발견하였다. 내용에 노사나불이란 명칭이 2번 나와 이..

동해 삼화사 삼층석탑(보물1277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삼화사 삼층석탑 삼화사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비교적 높아 보이는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기단의 맨윗돌에는 별도의 탑신 괴임돌을 두어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번갈아 쌓아 올렸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그 규모가 서서히 줄어든다. 여러군데에 금이 가 있고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대체로 잘 남아있고 균형이 잘 잡힌 단아한 모습이다. 기단의 구성이나 별도의 석재로 탑신괴임을 둔 점 등으로 미루어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1997년 4월 대웅전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이 때 위층 기단 안에서 나무 궤짝이 발견..

동해 무릉계곡(명승37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무릉계곡 사진을 이제야 올려 본다. 삼화사 입구. 무릉반석 암각서 금란정 무릉반석 무릉계곡 명승지 등산안내도 학소대 병풍바위, 장군바위 쌍폭포 용추폭포 발바닥 바위 중앙 위에 오른발 발바닥 바위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한 약 4㎞에 달하는 계곡이다. 수 백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무릉반석과 호암소, 선녀탕, 장군바위, 쌍폭, 용추폭포 등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할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무릉계곡 이름은 조선시대 삼척부사 김효원이 붙였다고 하며,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1,500여 평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4대 명필가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옛 선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