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342

동해 김진사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83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김진사 고택. 전에는 동해김형기가옥이었지요. 주인이 사는것 같은데 인기척도 없고, 안내판도 대문 안에 있어 염치 불구하고 실례를 했네여. 오래된 소나무 숲 앞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집은 김형기씨의 11대조부터 살기 시작한 곳으로 조선 영조 2년(1726)에 지었으며, 그 후 많은 수리를 거쳤고 1922년에도 보수를 하였다. 행랑과 대문으로 구성된 별채는 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는 ㅁ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안채는 겹집의 형태이다. 가운데에 있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씩 방이 있으며, 대청 뒤쪽으로 1칸씩을 나누어 제실과 마루방을 두었다. 대청의 중앙 앞면 기둥만 원기둥으로 처리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대청의 천장은 목재가 다 드러나..

동해 용산서원전적류일괄(강원도 문화재자료 140호)

22년 1월에 가보았는데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에서... 문화재청에 주소가 '동해시 쇄운동 357'로 되어 있는데, 잘못된 주소입니다. 쇄운동 202-1이나 200-6으로 찾아가세요. 아래 사진출처 : 문화재청 용산서원은 조선 숙종(肅宗) 31년(1705) 삼척 부사 이세필(李世弼 )이 창건하여 교학에 힘썼으며, 그 뒤 여러번 중수되어 오다가 고종(高宗) 5년(1865) 대원군(大阮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撤廢)되었던것을 1966년 이 고장에서는 유서 깊은 서원(書院)이라 하여 이곳 사림(士林)들에 의하여 1966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동해 용산서원 소장 전적류는 동해서원의 운영에 대해 규정한 전적들로, 18세기 삼척지방에서의 생활사와 교육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1292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 삼화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이 불상은 시멘트로 만든 대좌 위에 머리로부터 가슴과 배, 등판을 붙여 안치했던 것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철불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듯하며, 얼굴에는 비교적 살이 올라 통일신라시대의 풍이 엿보인다. 가늘고 길게 뜬 눈, 오똑한 코, 두툼한 입술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도식적이며, 복부까지 속이 드러나 허리띠와 드리워진 매듭이 보인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복원하였다. 복원과정 중 오른쪽 등판면에서 약 10행 161자로 된 글을 발견하였다. 내용에 노사나불이란 명칭이 2번 나와 이..

동해 삼화사 삼층석탑(보물1277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삼화사 삼층석탑 삼화사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비교적 높아 보이는 기단은 각 층 모두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기단의 맨윗돌에는 별도의 탑신 괴임돌을 두어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번갈아 쌓아 올렸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그 규모가 서서히 줄어든다. 여러군데에 금이 가 있고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대체로 잘 남아있고 균형이 잘 잡힌 단아한 모습이다. 기단의 구성이나 별도의 석재로 탑신괴임을 둔 점 등으로 미루어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1997년 4월 대웅전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이 때 위층 기단 안에서 나무 궤짝이 발견..

동해 무릉계곡(명승37호)

22년 1월에 가본 동해 무릉계곡 사진을 이제야 올려 본다. 삼화사 입구. 무릉반석 암각서 금란정 무릉반석 무릉계곡 명승지 등산안내도 학소대 병풍바위, 장군바위 쌍폭포 용추폭포 발바닥 바위 중앙 위에 오른발 발바닥 바위 동해시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한 약 4㎞에 달하는 계곡이다. 수 백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무릉반석과 호암소, 선녀탕, 장군바위, 쌍폭, 용추폭포 등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할 정도로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무릉계곡 이름은 조선시대 삼척부사 김효원이 붙였다고 하며,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1,500여 평의 무릉반석에는 조선 4대 명필가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옛 선비들..

동해 이로동 기와가마터(강원도 기념물86호)

문화재청에 기와가마터가 이로동 700-1에 있다고 되어 있다. 위치가 좀 그렇다. 우회전 한다 굴다리 지나 오른쪽에 있다. 이 기와가마터는 남-북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앞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1호 가마와 2호 가마는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3호 가마는 1호와 2호 사이에서 깊게 위치하는데, 선대(先代)에 운영된 후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상부에서는 축적된 폐기장 유구가 발견되었다. 가마는 모두 황갈색의 생토층을 굴착하여 만든 지하식 굴가마(登窯)로,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연도시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축방향은 북서(아궁이)→동남(연도부)이다. 1호 가마는 도로공사 중 가마의 연소실 쪽 천장부가 노출되면서 발견되어 분구(焚口)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가..

동해어달산봉수대(강원도 기념물 13호)에 다녀오다

2022. 1. 25에 다녀온 동해 어달산 봉수대.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니 걱정입니다. 이곳에 주차한다. 주소는 동해시 대진동 산 24-13입니다. 정면에 보이는 길로 올라간다. 봉화대 등산로 안내판 길이 험하다. 운동화에 진흙이 달라 붙어 힘들다. 배우자는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본인만 올라 갔다. 드디어 다왔다. 20분쯤 걸린것 같다. 뒤돌아 보니 동해바다가 보인다.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동해 어달산 봉수대는 강원도 동해시 대진동 어달산의 정상에 있는 동해 어달산 봉수대에는 지름 9m, 높이 2m의 둥근 봉수대 터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 때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

동해 부곡지석묘(강원도 문화재자료46호)

다음지도, 인터넷에 부곡지석묘는 동해시청에 있는 공원 안에 있다하여 아무 의심 없이 동해시청으로 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새로 만든 주차장쪽에 있었단다. 시청 건물에서 나오는 남자에게 물으니 길가로 나가서 위쪽으로 가면 있다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시 시청 담당자에서 전화했다. 옮긴 주소지를 알려 준다. 구호동 239번지 구호공원에 있단다. 구호공원 입구이다. 추암동 무덤이다. 추암동 고분군 동해 송전동 고인돌 부곡지석묘이다. 본인이 본 지석묘 중에서 제일 작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

동해 삼화동 고려고분(강원도 기념물90호)

어렵게 찾은 삼화동 고려고분이다. 입장료 내는 근처에 있는 해설사는 삼화사 안에 있다고 하고, 삼화사에서 스님께 물어보니 삼화사가 40여년전에는 주차요금 받는 근처에서 옮겨왔는데 그 근처에 있지 않나 한다. 문화재청 홈피에는 삼화사가 있는 삼화로 584로 되어 있다. 지나는 여행객에게 물어도 모른다 한다. 할수없이 동해시청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자세히 알려 준다. 요금을 받는 아가씨에게 물으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왕복 2시간은 걸린단다. 주차요금을 내는 곳이다. 고려고분은 이곳을 지나자 마자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한다. 임시 화장실 오른쪽에 850m에 있다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있다. 곳곳에 가는 안내가 있다. 한참 갔는데 550m 남았단다. 이런 오래된 묘가 여럿 있다. 차안에서 기다리는 배우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