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문화재 49

구례 화엄사구층암석등(전라북도 유형문화재132호)

화엄사의 부속암자인 구층암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 받침돌로 구성된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각 면에 안상(眼像)을 조각하고,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다.4각의 가운데기둥은 길고 ..

남원 실상사위토개량성책(전라북도 유형문화재88호)

이 성책은 사찰의 토지대장으로, 실상사 소유토지대장 중 일부분이지만 여기에서 250년전의 조계종사찰 재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사의 토지재산을 알 수 있다. 크기는 세로 66㎝, 가로 46㎝이며, 전후 표지를 합해 19매이다. 내용을 보면 실상사의 본사(本寺)와 여러 소속암자의 토지 및 불양답(佛養畓:사찰에 기증한 토지)을 구분하고, 전답의 소재지·명칭·위치·형태·등급·경작인·조세 등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전답에는 이 절의 소유토지의 기장번호가 있다. 이것은 250년전에 시행된 토지대장의 정리·측량법· 세제·소유자와 경작권·경작권의 실제 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실상사의 옛 모습을 고찰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사친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

남원 교룡산성승장동인(전라북도 민속문화재27호)

승려 처영에게 하사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처영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되어 성을 크게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하사하였다. 도장은 산성내의 선국사 주지에게 대..

남원 견두산마애여래입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199호)

수지면 신덕마을 뒤 견두산 입구에서 약 6㎞ 정도 올라가면 산 정상이 있고 정상에 있는 묘를 좌측으로 하고 내려서면 높이 5m 내외의 거대한 암벽이 자리하고 있다. 암벽의 하단 약 2.5m 지점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이 결실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연화좌대를 ..

남원 실상사(사적309호) 2

실상사와 백장암 약수암을 포함한 일대로서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있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하였으며,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서 머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숙종 때 다시 지었고 고종 때 화재를 입어 작게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명부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

남원 실상사(사적309호) 1

실상사와 백장암 약수암을 포함한 일대로서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있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 홍척이 창건하였으며,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서 머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숙종 때 다시 지었고 고종 때 화재를 입어 작게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명부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

남원 실상사극락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45호)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이 처음 지은 절이다.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홍척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다.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에는 세짝의 문을 달았고 양쪽은 한짝 씩의 문을 달았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38호)

홍척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는 ‘증각’이다. 탑은 기단(基壇)은 팔각형의 석재를 여러층 쌓은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들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고 윗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門)을 새겼다.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의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에는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인데 현장에는 실상사..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보물39호)

실상사에 있는 증각대사의 탑비이다.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보물33호)

실상사 안에 있는 극락전을 향하여 그 오른쪽에 서 있는 탑으로,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이다. 수철화상은 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후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탑은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맨 아래 바닥돌에서 지붕까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에 구름과 용무늬와 사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가 삼중으로 조각되어 둘러져 있다. 8각의 탑몸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문(門)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