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재 28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 창건시기에 세워진 신라양식의 석등으로 알려져 있음. ◦ 지붕돌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과 받침기둥이 가늘게 만들어 졌으며, 팔각형 지붕돌의 상륜부가 파손되었으며, 높이는 220cm이고 화강암으로 되었으며, 파괴되었던 것을 수습하여 지금에 이름.(출처 : 문화재청)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 이 불상의 얼굴모양은 타원형인데 마멸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기 어려움. ◦ 머리는 소발이며, 정수리 부분의 육계 표현은 뚜렷하지 않음. 왼쪽 귀는 없어지고 코는 시멘트 때움 되어 전체적인 인상이 일그러졌지만 비교적 우아하고 세련되게 처리한 흔적이 보임. ◦ 목에는 삼도가 두렷하며, 오른손을 내리고 왼..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2011년가 갔을시에는 없었는데 복원해 놓았네여.(여행&사진 (daum.net)) ◦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성주사의 금당에 오르는 돌계단임. ◦ 이 석계단 양쪽에는 돌사자상 조각되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조각 수법이 아주 뛰어났으나 이것은 1986년도 도난당하였고, 2013년 중심사역 정비 시 복원하여 재설치 하였음.(출처 : 문화재청)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2019. 03. 2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26호에서 보물로 승격됨. 2011년에 갔을시 왜 보물이 아닌지 궁금했었는데. 여행&사진 (daum.net)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이하 동 삼층석탑)」은 성주사지에 남아있는 4기의 탑 가운데 하나다. 성주사는 847년 낭혜화상(800~888, 신라 후기의 승려 무염)이 개창하여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 삼층석탑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다른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에 같은 장인에 의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 높이는 4.1m로 2층 기단위에 3개의 층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성주사지에서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뒤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탑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석탑이다. 성주사는 구체적 유래는 전하고 있지 않지만 백제 땅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그 배치구조가 특이하며 이외에도 또 다른 3기의 탑과 석비, 귀부, 석축, 초석 등 많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탑을 받치..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성주사의 옛터에서 금당터로 추측되는 건물터 ..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탑비이다. 낭혜화상은 무열왕의 8세손으로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해에 출가,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당시 웅천(지금의 보령)에 있던 오합..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2011년에 가본 성주사지(여행&사진 (daum.net))에 형님부부와 다시 가보았다.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석등과 오층석탑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충청남도 유형문화재32호)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는 웅천읍 수부리 산16-6 단원사에 있다. 비신을 만들어 놓았네여. 마치 종이 가면을 쓴 석상 같다. 마치 주인 없이 집나간 것 같다. ◦ 비신(碑身)이 없이 귀부(龜趺, 받침돌)와 이수(螭首, 머리돌)만이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된 어느 고승의 탑비이지만 비신이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음. ◦ 다만 조각 수법․양식․크기, 그리고 옆에 있는 뛰어난 수법의 8각 원당형 승탑(부도) 파재(破材)로 보아 고려시대 어는 유명한 승려의 탑비와 부도로 추정됨. ◦ 이수의 중앙 정면 전액(篆額)에는 글씨가 없고, 다만 용과 구름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귀부에도 거북등 모양과 발 고리 턱수염 등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음.(출처 : 문화재청)